마츠모토 타이요, 이주향역, 문학동네
일본은 시스템의 나라다. 다른 말로 하면 틀의 나라, 상자의 나라다. 오랜 전통을 가진 장인들이 삶의 곳곳에서 자기 일에 사명을 불태우는 나라. 그런 사회에서 파격이란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스스로 만드는 꼴이다. 지정된 선과 면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사회, 한 번도 일본에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국화와 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단어를 쓰자면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이다. 특히 만화 자체가 아날로그의 진수다. 손에 쥔 펜을 통해 칸칸을 메꿔나가는 일본 만화의 디테일을 따라갈 성격을 지닌 민족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단연 독보적이다. '동경일일'은 그들의 이야기다.
만화 잡지 편집자 시오자와는 어릴 때부터 만화덕후였다. 그가 30년 재직 후 자신이 편집 책임을 맡고 출간했던 잡지의 판매부진으로, 스스로 책임진 행위가 퇴사,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고민과 번뇌에 싸여 신변을 정리하며 어릴 때부터 모으고 탐독했던 만화책을 헌책방에 내다 팔기로 하지만, 숨겨둔 마지막 막스에서 쏟아진 만화책들을 보면서 헌책방에 준 만화책들을 다시 찾아온다.
자신이 필생의 각오로 이루고자 했던 일, 만화의 대가, 업계의 신이라고 믿었던 지금은 퇴물이 된 개인적인 수집품 같은 만화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영화에 '로드 무비'가 있듯, 만화에도 로드 만화가 있다면 그런 형식인 셈이다. 그는 다시 한번 꿈꾼다. 그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만화, 생생하게 꿈틀대며 진정성으로 가득 찬 전성기 때의 만화를 그려달라고, 진심 어린 부탁을 하며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동틀 녘'이라는 잡지 창간호를 만들어낸다.
시오자와가 찾아다니는 만화가들은 저마다 사연들을 안고 갈아간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각광받았던 전성기가 지나고 만화 그리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하는 마음 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만화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 편집자의 꿈, 그들을 관통하며 지배하는 틀, 상자는 삶이다. 일본인 특유의 상자 속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람냄새 가득한 아날로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사람에서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보다. 이런 걸 일본인답다고 말한다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우리와는 결이 다른 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