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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장소미 역, 녹색광선

by 별사탕


‘콜레트’(2018년 선댄스 영화제 개봉)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책에까지 손이 갔다. 영화는 프랑스 여성작가 콜레트(1873-1954)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다. 선구적 여성들이 그렇듯이, 남성의 지배를 뚫고 나오는 여성 작가의 삶을 그렸다. 어떻게 걸출한 여성작가가 탄생하게 되는지 남성이 지배하는 시대적 부조리함에 저항하면서 그녀만의 삶을 창조해 나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셰리’(1920)는 콜레트의 열한 번째 장편소설이다. 콩트->희곡->소설로 성장 발전시키며 종당엔 연극무대의 배우로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은 작가로서뿐 아니라 배우로서의 그녀가 가진 에너지를 알게 해 준다. 모든 선구자가 그렇듯, 시대의 고난을 뚫고 나온 사람은 투사로서의 면모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기 쉽다. 그렇게 콜레트는 프랑스 여성문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프랑스 최초로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여성이 되었다.


'셰리'를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탈적 사랑이라는 주제 때문이었다. 무엇이 일탈이 되는지 분간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는 현실에서 흔들리는 중심을 잡는다거나, 직접 겪어 볼 수없는 충격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해본다거나 하는 일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이러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생각과 수용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유모(누누, 레아)가 소중한 아이(셰리)를 돌보는(혹은 사랑하는) 이야기다. 25년의 나이차에도 두 사람이 연인이 된다는 것은 파격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셰리의 엄마와 레아가 친구사이라는 점은 더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더, 더구나 셰리의 엄마 샤를로트 플루가 레아와 셰리의 관계를 알면서 묵인하고 있었다면 더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준다. 결국 이 이야기는 친구의 아들과 연인관계에 있고, 그들이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나 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레아는 지금 50세가 된 전통적인 귀족 계급에 속하는 유한마담이다. 1920년대 프랑스의 레아와 같은 여성들의 삶은 결혼 후 남자들의 재산을 상속 혹은 증여, 또는 유산으로 받아 남은 여생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부류다. 남는 시간을 사교와 유흥, 집안을 가꾸고, 자신의 몸을 치장하는데 시간을 다 쏟아붓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운전기사, 집사, 가정부를 두고서 말이다. 직업도 수입도 없이 6개월씩이나 유럽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재력이 밑받침이 되는 사람들, 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은 세월이며 늙음이며 여성으로서의 탄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노화다.

레아에게 이제 막 25살 된 아들 같은 애인이 있다. 어릴 때부터 봐온 친구의 아들은 너무도 사랑스런 청년으로 성장했고, 둘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늘 함께 자는 부부와 같은 사이가 된 지도 벌써 6년째가 되었다. 셰리의 엄마 플루는 아들 셰리를 강제 결혼 시킨다. 신부 측의 지참금이라는 재산증식의 목적도 있고, 아들을 친구로부터 떼놓으려는 심산이이 작용하기도 했다.

셰리는 결혼 후 배우자와의 생활에 방황하며 레아를 잊지 못한다. 레아 또한 그녀의 본마음 같지 않게 셰리를 떼어내고자 주변에 아무런 고지 없이 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렇게 두 사람에겐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

서로가 그리워 애탔던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 레아는 셰리에게서 사랑을 재확인한 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지만, 셰리는 언제까지 자신의 '여자'로부터 어린애 취급당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마음 한쪽에 깊게 배어있었다는 걸 확인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셰리는 레아로부터 놓여난다.

28살 때부터 50살이 되기까지 6명의 애인(기억하는 부분만)을 섭렵한 여자, 레아가 정착하고자 한 곳은 젊음이었다. 그래서 노화되어 가는 육체의 미래를 주변 친구들을 통해 확인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악몽이나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 눈을 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레아가 선택한 것은, 이 모든 현실을 거부하는 것, 셰리로부터 강제로 격리하는 여행이었다. 반면, 불타는 청춘 세리는 떠나간 레아를 그리워하지만, 그녀에 대한 충실한 감정으로 아내 에드메(에드메의 어머니 또한 친구다.)와의 불화가 생겨나고 가정을 거부하는 듯한 행태를 잠시 보이지만, 셰리는 아내에 대한 책임과 가정을 끌어나가는 가장이라는 책임 있는 어른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된다.

나이 든 여자의 추한 결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젊음에 패배하는 늙음에 대한 이야기, 뒤집어 말하면 승리하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다. 절대로 늙음이 젊음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비극 속에 꽃 피운 한 송이 꽃 같은 이야기.


"서둘러, 셰리, 어서, 어서 네 젊음을 찾으러 가. 나이 든 여자한테 조금 축난 것뿐이니까."




프랑스, 이 나라는 최소한 자기감정을 스스로 기만하지는 않는 국민성을 가진 듯하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듯 남의 감정도 똑같이 존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싶었던 것은 오래된 나의 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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