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률, 행성B
한국사를 가요로 풀었다는 뜻으로 제목을 받았으나, 꼭 그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결말이 난 책이다. 그래서 한국대중가요사의 측면에서 한국사를 다룬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사 전체를 가요로 정리한 책도 아니었다. '가요'라는 말을 그저 '노래' 쯤으로 받아들여 '노래로 읽는 한국사'라면 납득할 만한 제목이다. 중앙일보에 칼럼으로 실렸던 글을 졸가리를 잡아 편집 출판한 책이라, 재밌고 부담 없이 읽히는 책이다.
익히 거의 알법한 이야기들을 노래를 제시하면서 얽었다는 면에서 나름 참신한 생각으로 엮어 나간 이야기책이다. 신화의 시대에서부터 최근의 탄핵 정국의 현실까지 담아낸 노래들을 내세워 노래와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신해철의 죽음을 돌아보며, 너무도 어이없는 죽음에 서글퍼하고 분노하면서 삶의 덧없음을 눈앞에 보는 듯하다. 이런 사람을 선구적 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의 앞서간 재능과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도는 예인으로서의 삶을 있는 힘껏 살다 간 사람으로서의 신해철이다. 그가 더 빛나는 이유는 그가 남긴 노래를 통해서 그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미래를 삭제하고, 한 사람의 예인을 우리들의 눈앞에서 없애버린 자는 사람인가, 시스템인가. 그래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하나 더 추가할 수밖에 없다.
가요 자체가 민중사이며 애환의 삶, 핍박의 삶을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자를 남기는 것은 식자의 일이며 이들이 남긴 지배의 역사에 반해, 글을 모르는 무식자들이 남긴 것이 바로 노래, 가요라는 것에 지극히 공감한다. 모더니즘시대의 이분법으로 살피면, 문화 자체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양분되어 한쪽은 주류로 한쪽은 비주류로 양지와 음지의 모습으로 전승되던 때가 있었다. 민중의 노래는 그래서 저급한 문화로 취급되어 왔던 것.
소위 말해, 역사의 비사들은 주류의 역사에 한걸음 비켜서있다. 그런 감춰진 이야기들을 노래로 풀어 이야기하는 묘미가 있고, 독자들은 그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들만하다. 이성계의 둘째 부인 강씨 이야기가 그렇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고려에서 관등 행사장에 왕을 모시고 등장한 박유를 가리켜 '저자가 아내를 여럿 두자고 청한 놈이 바로 저 늙은 거지다.'라고 손가락질을 한 여성 집단의 기개는 빛나는 고려 여성의 자존심 이었다. 일부다처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정책적 이유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고려 여성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그 장면은 충분히 역사의 한 장면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후 이성계에게로까지 넘어온 일부다처는 서울처와 시골처라는 개념으로 정착했다. 그래서 서울처, 즉 이성계의 출세를 위해 헌신한 현비 강씨가 등장한다. 그녀의 소생이 방석이다. 이성계는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되고, 이에 공신이었던 이방원이 반대 행동에 옮긴 일이 바로 왕자의 난이었다.
원나라의 공녀 선발은 권문세가 딸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일부다처 정책을 펴고자 했으나, 여성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중혼제도로 정착되는가 싶었지만, 왕조가 바뀌어 태종 이방원에게 넘어와서야 왕자의 난으로 단박에 정리되어 버린 사건이었다. 이방원은 강씨 소생의 자식들을 모두 몰살시키고, 이후 다시는 양처를 두는 일이 없도록 엄명하였다. 이방원이 포악한 사람이었는지, 모성에 지극히 충실했던 효자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끝에는 이 땅에 사는 여성의 승리라는 결실을 얻은 것이라 본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꼭지꼭지마다 이어서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은 아무 쪽이나 펼쳐 읽어도 크게 상관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역사를 기술한 책도 아니고, 가요의 변천을 다룬 가요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그냥, 다 아는 이야긴데, 새로운 해석 쪽으로 나간 부분도 있어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도 제공하니,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유익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