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홍성영역, 오픈하우스
우리에게 '리플리' 시리즈로 잘 알려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7년 작품이다. 사실 리플리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앨론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1960.11)에서부터다. 그 영화가 최근(2000.3) 상영된 '리플리'의 원작이고, 다시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이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1955)라는 사실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하이스미스가 리플리를 '태영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자연스러운 사실들일 것이다.
서른여섯 살의 빅터 반 앨런은 겉으로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부의 원천은 물려받은 유산에 있었다. 즉 빅터는 유산상속자로, 4만 불 정도의 유산 수입으로 웨슬리라는 뉴욕 외곽의 신도시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는 유한계급이다. 그가 어느 날 조엘 내쉬에게 맥레이를 아무도 몰래 죽였다고 말한다.
맥레이는 아내 멜린다와 내연의 관계인 남자였다. 사실 빅터는 맥레이로 인한 불안증을 '그를 내가 살해했다'는 망상으로 심리적 안정을 꾀하고자 지어낸 말이었다. 그 후 자신의 울화가 해소됨을 느꼈기 때문에 정신적 효과는 있었다.
조엘 내쉬는 맥레이 이후 멜린다가 호감을 가지고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여흥을 즐기는 새로운 남자였다. 빅터의 입에서 '맥레이를 죽였다.’는 말을 들은 조엘 내쉬는 빅터의 집에 발길을 끊었고, 이후 피아노 연주자 찰리가 멜린다와 새로운 내연의 관계를 맺는 남자로 등장한다.
질투심이 발동한 빅터는 찰리를 수영장에서 익사시키는 방법으로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흥분한 멜린다는 동네 사람들에게 빅터가 맥레이에 이어 찰스까지 죽였다고 떠들고 다니고, 자신의 딸 트릭시를 통해 '아빠가 찰스를 죽였다'고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후 멜린다에 의해 살인사건 조사를 위해 사설탐정까지 고용되지만 빅터에 의해 발각되면서 사설탐정은 뉴욕으로 쫓겨간다. 건축산업자 캐머런이 다시 멜린다의 내연남으로 등장한다. 그마저 죽여버린 빅터는 태연하게 넘어가려 하지만, 돈윌슨에 의해 증거가 될 핏자국이 발각되고 가장한 태연함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빅터는 집으로 돌아와 멜린다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이런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다. 이야기를 통해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빅터의 살인동기와 최후의 모습이다.
우선, 살인동기.
빅터의 성격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이성적이며 지적이다. 사람들과 지적 주제로 대화를 즐겨하지만, 몸을 움직여 춤을 추는 사교는 즐겨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반면 아내 멜린다는 외향적이며 특히 남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처음 본 남자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둘은 철저히 대조적이다. 당연히 집안의 주도권은 멜린다가 가지고 있다. 또한 빅터가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멜린다는 집안일과 육아를 적극적으로 싫어한다. 이런 정황이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기류를 탄다. 그래서 둘의 삶이 이혼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건 당연한 귀결.
-그의 마음속에서 멜린다는 '나의 적'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이성이나 상상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적이었다.
빅터는 멜린다를 참아내며 살고 있다. 거기에 외도로 일관하는 아내의 바람기는 참을성을 도를 넘는다. 그 스트레스가 우연히 허언 한마디도 풀어지는 것을 경험한 빅터, 급기야 멜린다의 내연남들을 하나씩 죽여 나간다. 순간순간의 당황스러움을 특유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으로 극복해 가며 자신이 저지름 살인에 대한 기억까지 지워나간다. 그것은 충격적인 경험을 잊는 방어기제의 하나다. 무너지는 정신을 지탱해 나가는 기억력의 삭제, 뇌가 명령하는 생존을 위한 기억 삭제.
아내에 대한 분노가 그녀의 내연남들에게로 쏟아져 나온 것이, 직접적 살인동기다. 그래서 하이스미스는 빅터의 심리를 이렇게 요약하고 이야기를 끝낸다.
-빅터는 온 힘을 다 해 멜린다의 목을 졸랐다. 미칠 듯이 화가 났던 건 그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날개가 없는 추한 새들. 빅터는 윌슨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세상은 나 덕분에 돌아간다는 음울하고 회한에 찬 윌슨의 얼굴 뒤에는 보잘것없고 멍청한 생각뿐이었다. 빅터는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놀랍지 않은가, 셋을 죽이고 가정을 파탄 낸 연쇄살인범의 내면은 다름 아닌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이. 빅터의 내면에는 극도의 이기심(이기심은 놀랍게도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으로 밖으로 드러난다.)이 들어앉아 있고, 그로 인해 오로지 타인의 잘못으로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는 회피성 타인 탓 사회 탓 세상 탓으로 죄를 전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1950년대를 관통하는 하이스미스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은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다. 그녀의 소설이 과도한 폭력과 선정성을 묘사하지 않고도 충격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천성적으로 남자를 좋아하는 아내의 끊김 없는 남자관계, 질투심이 차곡차곡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남편의 내연남 살인, 그들의 중간에 놓인 해맑은 어린 딸… 이런 상황 자체가 현실이 되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