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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3.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는 댁은?


원작, 감독, 각본, 콘티, 캐릭터디자인 : 미야자키 하야오

음 악 : 히사이시 조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등급 : 전체

개봉인 : 2023. 7.14.

런닝타임 : 124분


  중간 중간에 좀 잤다. 어떻게 이런 명작 앞에서 졸 수가 있냐고? 천하장사도 지 눈꺼풀 하나 들어올리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잠깐 정신이 나간 사이에 나왔던 그 장면들이 주요 장면들이었다면, 난 빵점짜리 감상문을 쓰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론, 대충 졸며 영화를 본 사람도 자기 나름의 감상평이 있을 수 있다는 꺠우침에 도달했다. 일종의 적극적인 변명을 할 수 있는 뻔뻔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당연하게도 인생을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임에는 변함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뻔뻔한 자신감을 한 줌 삼켜두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오늘도 쓴다.


 우선 이 만화영화는, 자기 역사에 대한 인정, 자기 역사에 대한 긍정적 힘(이 부분을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미화로도 볼 수 있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태평양전쟁 통에 어머니를 잃은 마히토는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도쿄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으로 내려온다. 아버지의 재혼 상대는 어머니의 여동생, 마히토에게는 이모이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처제가 된다. 이것도 형사취수의 근친혼 관습의 일종이다. 형의 아내나, 아내의 여동생이나 어차피 남남이긴 마찬가지니까. 족보가 조금 꼬일 뿐...

  전쟁으로 인한 군수품 공장을 크게 운영하는 아버지는 자신감에 찬 인물이며 자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인물이다. 그런데 이 저택에는 큰 할아버지가 지었다는 비밀의 건축물이 감춰져 있다.(하야오다운 발상의 반복이다.) 거기서 나온 왜가리가 인간의 말로 어머니가 죽지 않았으므로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며 비밀의 건물로 끌어들인다.(새를 비롯한 각종 동물이 인간의 말을 하는 것 또한 하야오적 발상이다.) 저택의 할머니들에 의하면 이 건축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를 마히토의 큰할아버지가 발견하고 그걸 보호하기 위해 다른 건축물을 덧씌워 지금의 비밀 건축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마히토는 이 건축물 안에서 아직 자신을 낳지 않은 젊은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가 재혼한 어머니 나츠카를 구한다.(이 건축물은 현재와 과거의 공존이라는 비동시적 시간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 공간을 제공하한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곧 전쟁은 끝나고 마히토는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삶은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몇 개의 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들 소설들은 제목 하나 건졌을 뿐 내용과 직접적 영향 관계는 없다. 오히려 하야오의 자전적 요소가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즉 마히토가 하야오 자신이라는 것.

  전쟁이 일어났고, 어머니가 죽었고, 아버지가 재혼한 상대가 이모였던 한 소년. 이런 절박한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소년의 심리적 현재를 동화적 판타지로 치료,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마히토는 활기차게 새날을 향해 나아간다. 그게 다다.

  이 와중에 등장하는 것이 군국주의에 대한 찬양과 처제와 재혼하는 근친결혼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다. 난해하다는 둥의 반응을 보이는 평들도 보인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우리로 치면, 6.25를 겪은 사람은 모두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는 국수적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친 사적 감정-우리 민족과의 특수관계에서 기인한-에 치우친 해석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돌은 그간 일본을 보호하는 신성한 돌이며 전쟁으로부터 폐허가 된 일본을 상징한다.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정신, 그게 바로 '그대들'이며, 현재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전쟁을 겪은 노인 ‘하야오’는 묻는다, ‘너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을 뜬금없이 던지는 장편 만화영화다.      

 어떠한 비판도 배제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 노인이 남길 마지막 교훈쯤으로 보는 것, 딱 그만큼의 작품이다.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라떼는 말이다,  
I was not fine, Thank You. A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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