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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

해피엔딩의 엔딩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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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터 패럴리

각본 닉 발레롱가

브라이언 헤이스 커리
피터 패럴리

촬영 신 포터 음악 크리스 보워스

출연 비고 모텐슨 (토니 발레롱가 역) 마허샬라 알리 (돈 셜리 박사 역) 린다 카델리니(돌로레스 역) 세바스찬 매니스캘코(조니 역) 디미터 D. 마리노프(올레그 역) 마이크 해튼(조지 역) 이크밸 테바(아미트 역) 브라이언 스테파넥(그레이엄 킨델 역) 조셉 코르테스(지오 로스쿠도 역)

개봉일 2019년 1월 9일

상영 시간 130분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1962년 뉴욕, 이태리 이민자 출신인 토니는 코파카바나 나이트클럽의 질서를 책임지는 기도다. 클럽 내부수리로 직장을 잃자,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인 신세가 된다. 그에게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운전기사 제안이 들어오고 인종차별적 무의식이 깔려있던 토니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수락하게 되면서 둘의 여정은 시작된다. 흑인에겐 남부를 책임지는 든든한 백인 안내자가 필요했고, 백인에겐 가장으로서 가져와야할 수입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돈 셜리의 음반 제작자이자 남부 순회공연의 계약자인 음반회사는 토니에게 그린북을 건넨다. 60년대의 남부지역을 여행하기 위해선 흑인이 묵어야 할 숙소와 식당, 주유소 등 알고 가야 할 여행정보지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토니는 놀란다. 연주 여행을 하면서 토니는 셜리로부터 고상한 언어 사용법에 대해 배우고 그에 따른 생활 예절을 배우는 건 덤이었다. 돈과 토니는 흑백의 피부색뿐 아니라 문화적 교양과 예절에서 서로 정반대였다. 토니는 뒷골목의 깡패였고, 돈은 예술가이자 신사였던 것. 두 사람의 피부색이 현실을 반전시킨다는 면에서 극적인 설정이 스토리 근간을 이루고 있다.


몇 개의 상징적인 사건이 등장한다. 아내 돌로레스에게 쓰는 편지를 돈이 불러주는 장면, 돈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방면, 돈이 연주할 공연장 식당에서 정작 주인공인 자신은 식사할 수 없었던 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모티브들은 돈이 연주하는 곡들이 그가 전공한 클래식 피아노곡이 아니라 모두 대중적인 곡들이라는 점이었다. 정작 자신의 특기인 클래식 연주, 쇼팽을 내 식으로 연주하는 것이 자랑이었던 돈이 연주할 수 없었던 상황, 백인이 아니고선 클래식을 연주할 수 없다는 정신적 차별주의, 물리적인 것을 넘어 극복되지 않는 차별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백인의 삶을 살면서 백인도 아니고, 타고난 흑인이면서 흑인의 삶도 이해하지 못하며, 남자면서 남자이지도 않은 그의 정체성은 혼돈이다.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으면 도대체 나는 뭔가?' 60년대 미국의 흑인 동성애자가 느끼는 삶의 비애가 한마디로 정리된다. 그것도심리학 박사이며 천재적 피아니스트인 흑인이었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을 끝내 거절당하고 그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 또한 거부한 돈과 토니가 들른 흑인들의 클럽에서 그렇게 고집하던 슈타인웨이 피아노도 아닌, 한쪽 구석에 다 찌그러져가는 풍금 같은 피아노에 앉은 돈은 그나마 피아노 위에 놓였던 위스키 잔을 내려놓는 행위로 자존심을 지키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아이들 장난같이 몇 개의 건반을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시끄러웠던 클럽 안은 차츰 조용해지고, 빠르게 손가락이 건반 위로 날아다니기 시작하자 이내 마법과 같은 연주가 시작된다. 기절할 것 같은 높은 음의 건반들이 일시에 와르륵 와르륵 무너지며 장내를 무력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연주에 정신줄을 놓고 쳐다본다. 아주 짧은 동안 이 연습곡은 연주되고 마지막 건반이 띵, 하고 눌러지자 관중들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부터 돌아와 박수를 쳐대기 시작한다. 돈 셜리의 존재감이 빛나는 순간이다. 쇼팽의 에튀드 op.25-11, 돈이 자기만의 연주로 잘 칠 수 있다고 하던 곡이었다.


허리우드, 디즈니식의 해피엔딩을 예견할 수 있는 영화다. 늘 우리는 그들의 전략에 속는다. 뻔한 결말일 거야, 그건 안 봐도 뻔한 해피엔딩일 거고, 둘은 결국 화해하고 포옹할 거야. 영화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영화는 티브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돈의 밴드가 연주하는 HAPPY TALK에서부터 돈의 독주 쇼팽의 에튀드까지 극장에서 듣는 사운드의 효과는 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영화는 스크린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운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만드는 자의 감흥과 성취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가 영화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극장의 객석에 관객이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곳이 극장이며, 이 영화의 감동 또한 극장에서 극대화된다.


인종차별의 문제를 두 사람의 개인적 차원에서 보여준 것은, 두 사람의 우정에 한정된다. 이것이 사회문제로 비화되지 않는 것은 인물들의 갈등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어서 그렇다. 모든 문제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된다면, 현실적으로 해결될 사회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허리우드식, 디즈니식의 해피엔딩이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은 세상은 언제나 고통을 극복한 후에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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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