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정부, 대한민국
1922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만세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실상은 누워 떡먹기지. 나두 이번에 가서 해오면 세 번째나 되오마는, 내지의 각 회사와 연락해 가지고 요보(조선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들을 붙들어 오는 것인데, 즉 조선 쿨리(苦力) 말씀요. 농촌 노동자를 빼내 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대개 경상남북도나, 그렇지 않으면 함경, 강원, 그다음에는 평안도에서 모집을 해오는 것인데, 그중에도 경상남도가 제일 쉽습넨다, 하하하.”
그자는 여기 와서 말을 끊고 교활한 웃음을 웃어 버렸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불쌍한 조선 노동자들이 속아서 지상의 지옥 같은 일본 각지의 공장과 광산으로 몸이 팔리어 가는 것이, 모두 이런 도적놈 같은 협잡 부랑배의 술중(術中)에 빠져서 속아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자의 상판때기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가는 관부 연락선, 배 안의 목욕탕에서 일본인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주인공 이인화가 듣고 있는 장면이다. 징용모집원으로 조선에 가서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요지다.
이런 일은 해방 후, 근대화의 과정에서도 벌어진다. 그 현장에 홀트 아동복지원이 있었고, 형제 복지원이 있었다. 이들은 이란성쌍둥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오간 경찰과 국가 행정기관이 있었다.
2012년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는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그는 84년 미국으로 입양되어 무국적자로 판명되어 한국으로 추방되었으나, 한국 국적자도 아니었다. 미국인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 추방된 그는 5년간에 걸쳐 친부모를 찾으려 백방으로 뛰었으나 실패했다.
그 여정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가 케이넘버다. 해외 입양자의 친생 부모 찾기, 성공률을 1% 미만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그건 복지원과 국가기관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봉사기관과 국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국가 행정부가 국민을 깔아뭉개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걸 다수의 입양자들이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부모가 거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입양자들은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부모에 의해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설사 어떤 상황 논리에 따라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굳게 먹고 있기도 한다.
자신들의 존재가 부모로부터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 속에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존감의 회복과 동시에 지난 삶에 대한 보상심리, 또한 조국이 나를 버렸다는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표현이다.
여기에서,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트라우마처럼 내려 꽂히는 일이 있다.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만세전의 구절이다. 일본인들이 모집해 간 징용, 위안부들은 교묘한 술책으로 꼬드겨 생활이 사활에 내걸린 절실한 사람들을 사기 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일본 정부는 지금도 그들의 정부가 나서서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그러한 사실은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데자뷔 되고 있다. 서구 국가에서 입양을 요구하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단, 고아여야 한다는 조건, 이것은 정말 교묘한 요구조건이다. 자신들의 죄를 면피하기 위해 내세운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한 경우의 수를 없애고, 그 절차와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거기에 한국정부가 나서서 아동판매를 합법화한다. 고아 아닌 아이를 고아로 만들어 호적을 새로 만들어준 것. 그래야만 아동 수출을 할 수 있다. 거기에 아이들을 모집한 기관이 복지원들이다.
정부는 고아가 아닌 아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 강제로 고아로 만들었고, 사설기관인 복지원들은 아이들을 모집해 관리했다. 거리의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경찰들이었다. 이쯤 되면 아동수출은 소위 말해 민관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을 입양인들은 국가를 상대소 소송을 제기했다. 5년이 지나도 결판나지 않는 재판에 속수무책인 한국적 현실에 절망하는 입양자들의 모습에서 허탈감을 느낀다. 고소인 일부승소, 국가는 무죄다. 국가의 면죄부는 사법기관을 끼고 되살아나고 있다.
일시적으로 미아가 된 아이들을, 고아로 둔갑시키는 일, 이런 산업구조를 모형화하여 서구에 그 시스템을 수출까지 한 나라가 대한민국의 행정부였고 사회복지 단체였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과거의 자료를 공유할 수 없다.
입양자들을 관리한 고유번호, 그것이 'K-Number'다. 이 번호가 단순 일련번호인지 주민번호처럼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지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케이넘버가 발행되기 전에는 단순히 번호를 부여해서 관리했으나, 숫자 앞에 K가 붙었다는 것은 이때부터 국제적 관계에 의한 체계적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해 평균 20만 명의 아동을 입양 보낸 나라, 어떻게 해서 고아가 매년 20만 명이 생겨 날 수가 있을까, 이들이 모두 고아가 되려면 40만 명의 부모가 죽어야 한다. 어불성설. 일제 강점기, 징용과 위안부 모집 과정에 있었던 일처럼, 해방된 조국에서도 그 누군가에 의해 일제가 한 짓을 그대로 모방한 집단(이들이 복지원과 같은 사설기관이며, 경찰들이며, 누군가 데려다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아이들의 신분을 세탁해서 전 세계로 팔아먹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입양시스템 자체를 송두리째 수출한 나라, 가장 추악한 정부를 가졌던 나라, 대한민국이 오명을 씻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입양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보공개를 해야 하고, 입양자 부모 찾기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국제입양으로 국가를 이동하는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고 입양에 의한 유괴‧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국제입양의 절차와 요건을 규정하기 위해 1993년 5월 29일 헤이그국제사법회의(www.hcch.net)에서 채택하고, 1995년 5월 1일 발효한 다자간 협약으로, 현재 당사국은 104개국)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마치 일제 전범 기업이 징용 위안부 피해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이다. 인정하는 순간 전세계로부터 빅엿을 먹고, 그에 따른 피해보상액이 천문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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