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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레귤레, 웃으며 안녕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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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로맨스, 멜로

감독 고봉수

각본 고봉수, 이주예

출연 이희준, 서예화, 신민재, 정춘, 김수진, 박은영 외

사운드 신정목

촬영 한정호

제작사 주식회사 필름초이스

배급사 인디스토리

개봉일 2025년 6월 11일

상영 시간 108분 (1시간 48분 26초)

상영 등급 영등위 15세 이상


단순하다. 사회생활에 적응 못하고 있는 스노보드 국가 대표 출신인 대식의 연애사를 기본 줄거리로 하는 헤어짐과 만남에 대한 일별(一瞥)이다.

티르키에 올로케라는, 독립영화로는 보기 드문 촬영현장을 소재로 했기에 눈에 띄는 장면들이 색다르게 연출될 거라는 기대감도 큰 영화였다. 독립영화, 소위 진흥원 지원작이라는 틀을 깰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촬영에 돌입한 영화였을 수도 있겠고, 그만큼의 성과를 냈다고도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러나'...

대식과 정화의 관계가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다.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자 둘의 관계가 별것 아닌 관계라는 것에 관객은 놀란다. 실망한다. 큰 비밀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렇게 꽁꽁 숨겨놓은 것치고 드러난 진실은 별거 아니란 얘기다. 그 대안으로 내놓은 대식의 순수함은 그 외모나 경력에 반해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남자의 순수함이 반전을 가져온다. 그게 얼마나 극 중에서 큰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관객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래서 필요한 장치가 허구의 핍진성, 개연성.

이 극이 주는 클라이맥스는, 각자의 방에 갇혀 서로를 상상하는 장면에 있다. 생각과 상상만으로 둘은 만리장성을 쌓는데, 뽀뽀, 키스, 울음, 서로의 오해를 푸는 수다, 등 현실과 상상을 연속적으로 이어 붙이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이 만들어낸 서로에 대한 망설임을 표현해 낸 연출적 방식이다.

만약, 이 장면들을 상상으로 처리하지 않고, 설령 상상으로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둘 사이에 서로 교감하는 정사장면으로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이 상상의 만남과 헤어짐의 망설임의 장면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느 지점으로 남는다. 그 이후 운명이 비켜가는 결별로 처리했다면 더 깊은 감정들이 전개되지 않았을까. 때로 시나리오단계에서 혹은 현장 연출의 단계에서 과감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각설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이 둘이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접점과 분리지점을 통해 결국 둘은 서로를 확인하게 되는데, 대식은 자신의 성격에서 오는 실수를 인정하게 되고, 정화는 잘못된 사랑은 바로잡고 삶을 제대로 살아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때가 지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남자는 사랑에 실패한 원인을 해소해서 결혼에 이르게 될 것이고, 여자는 극단적으로 싫은 남자와의 이혼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둘의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데 뭐라도 걸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식이 절규하는 ‘귤레귤레’는 이제껏 자신의 삶을 괴롭혔던 존재 정화의 존재와의 결별을 의미하고, 그에 화답하듯 정화가 내뱉는 탄식은 자신의 삶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에서 오는 감탄일 것이다. 한 명은 결별을 한 명은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 둘의 시간에는 분명 남은 시간도 존재한다. 열기구 투어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라면 그 자리에 정화는 대식을 기다리며 서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후반기의 단상들

영화의 여정을 돌아보자. 원창이 현지 바이어와 떠들고 있는 장면에서 대식이 혼자 서있는 각도가 셋이 함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한다. 대식이 혼자 어디 외딴 곳에 혼자 서있는 느낌, 아주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실수일까, 의도일까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

관광객이 들고 있는 고프로(개인카메라)의 시점은 밋밋하기만 한 고정카메라의 시점을 변화시키면서 입체적인 장면전환의 효과를 준다. 하지만 그게 다다. 개인카메라의 흔들림이 극의 흐름에 기여하는 바가 그렇게 크지 않고, 심지어는 없어도 그만인데 왜 넣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다.

티르키에 현지의 분위기를 살렸다면 풍광하나로도 기억될만한 영화였으리라 본다. 남녀 두 주인공의 이별과 사랑, 둘만이 알 수 있는 애틋한 감정까지 티르키에의 풍광 속에 담아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는 미련이다. 특히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귤레귤레를 외치는 장면에서 그 아름다운 색색의 열기구들이 화면에 가득 찼다면 지금까지의 허점들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만든 사람들의 몫이기 이전에, 보는 사람들의 몫도 생각해 주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 관객은 늘 사후 편집자일 수밖에 없으니까.

대식과 정화 두 주인공의 대화장면을 줌으로 잡아서 심도를 깊게한 후 배경을 날려버린 것도 아쉽고, 대식과 병선의 활극을 구경하듯 내려다본 시점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활극은 무려 국가대표가 후루꾸 쿵푸와 싸워서 나가 떨어지는 상식을 뒤집는 재미난 장면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영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배우들이다.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들의 열연. 돌아온 김흥국 혹은 찐따가 된 지상열로 나타난 신민재, 죽은 이남이가 돌아왔나 했던 정춘은 어디에 내놔도 제 몫 이상을 해낼 명품 조연들이라는 점, 이 작품 하나로 그들은 충분히 자신을 드러냈다고 확신하는 배우들이다.


영화가 주는 위안과 재미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은 소소하고 괴롭고 피곤한 것들의 연속이다. 그런 일들을 얼마큼 유사하게들 겪으며 우린 살아간다. 이런 쪼잔한 우리들의 삶은 어디에서 위로받게 되는가. 안정된 드라마의 1인 시점으로부터 흔들리는 개인카메라로,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을 수 있는, 주인공도, 조연도, 그걸 바라보는 자도 될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면서부터, 우린 한 순간이나마 자유로워진다.

그런 잔망과 쪼잔으로 물든 ‘나’의 초상을 보고 싶거든, '귤레귤레'를 보러 극장에 가서, 대식이 절규하는 ‘귤레귤레’를 지질하게 함께 외쳐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중얼거리듯 ‘귤레귤레’ 하면서 웃어보는 일도 한 번쯤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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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