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1988
후고 문스터베르크(Hugo Munsterberg, 1863~1916): <영화극:그 심리학적 연구>(1916) 최초의 영화이론서를 발간했다. 출간 직전 10개월간 영화(1915년 즈음의 단편 스토리 영화-story film-를 본 것이 전부)를 보고 연구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 있는 연구업적이다.
심리학자답게, 영화를 현실을 표현하는 매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매체라고 정의 내리고 기술적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런 연구자들의 일단은 영화가 색채를 가지는 것, 음향을 가지는 것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기술이 개발되는 방향은 영화가 인간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현하는 데, 즉 핍진성을 추구하는쪽으로의 잘못된 발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기술 개발을 통해 상상 너머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쟁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영화 초창기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칸트연구자였던 문스터베르크는 과학은 현상계의 인과관계를 밝혀줄 뿐, 사물이 가지는 가치나 추상적 문제 즉 ‘본체적 영역’(noumeral realm)은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현상계 너머 본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절대미 혹은 순수미를 경험해야 하는데, 이것이 예술을 통한 체험이 된다. 이걸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 ‘객관적인 미’라고 불렀다.
예술을 통한 순수미 체험은 정신과 사물 둘 다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 즉 '부유상태'(free-floating)를 경험하게 한다. 즉 예술 적 체험을 한 인간은 사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어떤 것이 만들어놓은 현상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선험적 대상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정신작용이며 관념작용이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실제세계와 유리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관객이 현실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영화가 만들어 놓은 세계로 몰입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몰입 후 관객은 미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미적 경험이 현실로부터 인간을 유리시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완전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순수하게 미적인 완전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된다.
현상계가 만들어낸, '시간 공간 인과'라는 삼자가 만들어내는 구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본연의 세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영화의 사명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연극을 복제하는 도구도 아니고, 기계장치에 의해 미적 체함을 전달하는 매개체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인간의 경험 욕구를 대체시켜 줄 수도 없다는 것인데, 이는 영화가 실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가 미적대상이 될 수 있는가. 사물이 예술화되는 과정과 방법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시간, 공간, 인과관계를 정신적 관계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화된다는 것은 이런 무질서한 상태의 현상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주체가 바로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걸 칸트식으로 다르게 말하면, 미학적 경험체로 완성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작품(영화)은 외부세계의 형식성을 통해 내면세계의 고성형식에 적합하도록 조정함으로써 미학적 경험체로 완성해 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관람자(관객)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작품은 경험적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형식적 통일성에 의해 만들어진 온갖 감성들은 영화가 끝나면 함께 끝난다. 하지만 동시에 통일성이 만들어낸 효과 때문에 영화에 대한 이미지 추상 들은 괌상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된다. 통일성이라는 형식은 영화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그러는 사이 관객은 몰입이라는 과정을 통해 현상계를 잊고, 자신까지 잊고, 순수한 미학적 경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이면서 칸트주의자였던 후고 문스터베르크는 영화 혹은 예술의 본질을 현상계를 지배하는 형식적 연결관계들이 '본연의 영역'에 가닿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본질에 가닿게 하는 방법으로 현상계의 사물들을 심리적 추상계의 원리들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본연의 세계를 체험하게 함과 동시에 이 세계(현상계)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 놀라운 미학적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스터베르크가 말하는 미학적 경험의 요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