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1988
저서: '예술로서의 영화'(Film as Art, 1932).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시자인 막스 베르트 하이머의 수제자중 한 명이다. 문스터베르크와 비슷한 경향이다.
예술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일부의 영화만이 대상이라고 언급한 후, 영화만이 가지는 예술적 기능이 매체로써 가지는 본질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가지는 매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주요 논점이었다.
영화가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 전제하고, 영화는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영화를 비현실적이게 만드는 구성요소는 스크린(평면에 영사), 거리감 파괴와 제한된 영상의 크기, 조명과 색조의 결핍, 영상의 조형, 시공의 연속성부재(편집), 감각자료부재(청각 후각 미각 등 오감이 불완전성)라고 지정한다. 영화는 이렇게 현실을 표현하는데 제약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을 프리즘에 비유한다.
영화제작자들은 영화 이면에 숨겨진 비현실성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화면에 보이지 않는 내재적 현상들을 인식하도록 유도해야한다고 봤다. 이런 내재적 현상, 즉 촬영결과물이 가지는 비현실성을 통해 다양한 표현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광각은 중량감이나 격렬함을 나타낸다거나, 달리는 사람을 정면 줌촬영을 하면 노력의 허망함이나 꾸준한 노력을 의미한다는 표현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작자의 고민이 생긴다. 영화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고 했을 때, 1.영화는 태생 자체가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현실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점, 2.제작자의 머리 속에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현실을 아무리 변형시켜도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있다. 이것은 조형주의자들이 말하는 영화의 추구방향이 비현실적인 방향이 되어야한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이다. 다만, 조형주의 영화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있는 것은 제작자가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찍기 위해 현실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데 영화의 예술로서의 비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이 예술로 존재하기 위해서나, 예술이 그 자체의 특성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예술의 매체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 매체가 가지는 감각화 도구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영화제작자는 영화 매체가 가지는 표현 수단으로써의 방법(감각화 도구)을 체계적으로 학습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성영화가 대사를 취급하는 것은 여러 감각화도구중 하나인 발성(대사)이 다른 구성요소를 잠식해서 영화가 예술로써의 기능을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소리는 사실에 가까워지려는 리얼리즘적 시도로 보았고, 리얼리즘은 예술을 타락시키는 도구를 추구하는 반예술적 경향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런 논리로 30년대 이전 유성영화를 극렬히 반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은 대개 심리학자들이고, 미학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영화의 예술성을 밝히려는 데 초점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분야인 게슈탈트(형태) 심리학은 1차세계대전후 번성한 학문으로 예술을 일반화하는데 공험을 했다. 예술의 영역을 천재들의 천부적 행위로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작용에 포함된 일반적 현상으로 본 것이다. (미술과 시지각, 1954)
이렇게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황동 근원-예술의 원동력-에 대해 탐구한 에른하임은 영화로 영역을 확장하여 모든 예술은 인간의 정신과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의 상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방식(예술작품)이라고 이해한다. 70년대까지 그이 생각에 영향을 받은 작가가 등장이 지속되면서 그의 예술관은 지지를 받았다.
문스터베르그와 아른하임은 30년대를 대표하는 심리학자였고, 그들이 연구한 영화 이론은 영화 초창기에 영화가 어떻게 예술로서 정립할 수 있겠는가 하는 데 기여했다. 인간과 세계와의 불균형한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심리적 반응이 예술활동으로 나타나고, 그 균형을 표한 한 것이 예술작품이라는 논점이다. 특히 아른하임이 주장의 기본 틀이 모든 예술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그 둘 사이의 어디 쯤에 자리잡고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체의 세계를 무시하는 행위(낭만주의)와 일체의 세계를 긍정하는 행위(고전주의) 어디쯤에 있다는 뜻은 인간이 늘 과거와 미래 사이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있을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 또한 과거와 미래의 사이, 현재의 어떤 곳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들 심지학자들이 전하고자하는 뜻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