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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그들이 '이사'간 '여름정원'

by 별사탕

<이사>

장르 드라마, 가족

감독 소마이 신지

각본 오쿠데라 사토코 오코노기 사토시

원작 히코 다나카 - 소설 《두 개의 집》

주연 타바타 토모코 사쿠라다 준코 나카이 키이치

촬영 쿠리타 토요미치

편집 오쿠하라 요시유키

제작사 요미우리 테레비

개봉일 1993년 3월 20일

화면비 1.66 : 1

상영 시간 125분 (2시간 4분 49초)

대한민국 총 관객 수 31,234명 (2025년 8월 15일 기준)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여름정원>

장르 드라마, 코미디, 성장물

감독 소마이 신지

각본 타나카 요조

원작 유모토 가즈미 - 소설 《여름이 준 선물》

제작 카토 에츠히로 후지카도 히로유키

주연 미쿠니 렌타로 사카타 나오키 오 타이키 마키노 켄이치

촬영 시노다 노보루

편집 오쿠하라 요시유키

제작사 요미우리 테레비

개봉일 1994년 4월 9일

화면비 1.85 : 1

상영 시간 1시간 53분(113분 38초)

대한민국 총 관객 수 7,645명

상영 등급 12 세 이상 관람가





예술가의 사회적 목소리는 자칫하면 선동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중있는 추종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대중을 움직이는 팬덤현상이 생겨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전후세대(1948년생)로 부모세대는 당연히 태평양전쟁을 겪은 전쟁세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파편화될 미래 일본을 현재시점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사'(93년 개봉)에서부터 과거에 대한 현재의 화해 제스처를 보여주는 '여름정원'(94년 개봉)에 이르기까지 불과 1년의 간극을 두고 보여주는 그의 사회적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급격하게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의 유형도 세분화되면서 전통적 가족제도가 붕괴되어 가고 있던 시절이 90년대다. 이런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 가족, 가정을 지키는 것은 불가항력이 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만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닌데도 유독 일본인들에게 가족의 붕괴가 치명적인 이유는 가족은 그들의 '집단적' 생명을 연속시켜 나갈 만큼의 중요한 기초단위이기 때문이다. 곧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가족이 붕괴된다는 것은 국가의 소멸과 연결되면서 그들의 정체성이 와해될 만큼 존립에 치명적이다. 이 새로운 사회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목소리가 '이사'에 들어있다.

이혼의 전과정으로 부모가 별거하기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렌은 고민이다. 좋아하고 따르던 아버지가 집을 구해 나가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 학교친구들에게 이혼가정이라는 시선과 멸시를 받기 때문이다. 이혼 가정에 대한 사회적 멸시가 드러나는 영화의 전반부는 일상의 드라마로 진행되고, 후반부는 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상황의 변화가 은유와 상징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다. 소위 말해 예술적 표현영역이 큰 부분이 영화의 후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해석의 가능성 또한 열려있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일본 사회의 변화에 따른 예술가의 사회적 목소리와 연관시켜서 보면 보다 선명하게 그 의도가 발견된다. 불놀이, 용선 경주, 둥근 짚불 태우기 등 일본의 전통 축제의 모습이 등장한다. 주로 강렬한 불의 이미지를 통해 일본의 재건을 꿈꾸는 듯하다. 특히 우리 풍습으로 치면 정월의 세시풍습인 달집 태우기 같은 행사에서 보여준 둥근 모양으로 불타오르는 짚더미는 해를 상징하며 동시에 일본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사'에서의 연속은 다분히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 일본이라는 붉은 해를 지키는 것, 가족집단이 붕괴되더라도 하나하나의 낱개로서의 구성원들의 삶의 방향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연속'과 '영속'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한 해가 가는 사이, 렌은 과거의 나를 보내고 새로운 내가 된다. 서로에게 잘 왔다고 축하하는 물속의 장면은 물의 이미지, 죽음과 생명을 의미한다. 달집을 태워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아 들이는 집단의 의식이 길게 연출된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 탄생한 일본은 환골했다기 보다, 탈태만 한 것으로 보인다. 뼈속까지 탈바꿈한 것이 아니라 겉모양만 살짝 바꾼 채 일본이라는 큰 흐름은 계속 유지되어야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 소마이 신지에게 단절이란 없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라는 구분, 도시와 농촌이라는 공간 등 사회전반을 지배하고 변화의 흐름에 직접적 주체로 등장하는 각종 사회 부속물들의 연속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생존을 넘어서는 의식이자 가치, 어쩌면 그들의 의식이 생존전략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과 인고, 낡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이사'를 마친 1년 뒤의 '여름정원'을 보자. 가족의 해체에서 죽음이라는 소재로 넘어오면서 이야기는 비약된다. 초등학교 축구부에 소속된 친구 세 명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그들 수준에서는 상당히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주제에 노출된다. 그래서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동네 노인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관찰대상인 노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노인은 죽고 그들의 과제도 해결 지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단도직입하자. 이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장면은 노인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노인은 필리핀에 참전하여, 전우와 부대를 지키기 위해 임산부를 사살한 사실을 아이들 앞에서 무덤덤하게 말한다. 이 장면은 영화를 주도하는 아이들의 시각만으로 볼 수 없다. 관객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인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들려줘서는 안 되는 흉측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있는 어른들의 폭력성을 직시할 수 있다. 이것은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인 이야기의 절대영역에 속한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과거사와 직결되는, 전범의 역사를 순수한 눈을 가진 아이들에게 '그도 또한 한 인간이다, 그는 충분히 참회하며 살고 있었고, 그리고 죽었다'는 서사를 전파한다. 납득할 수 없는 벼란간의 강제 인서트다. '이사'를 통해서는 가족의 단절을 힘겹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여름정원'에서 보여주는 죽음의식에서는 끊어졌던 과거사(일본 군국주의)를 다시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소마이 신지를 언급할 때,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의 초창기 거장감독들과 지금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현재의 거장감독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장이라고 말한다. 일본 영화사의 연속선상에 있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일본인들과 그들의 역사에서는 유의미하겠지만, 이런 방향의 사회적 목소리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은퇴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들고 다시 나타난 것과 맥락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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