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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리코르디아

성속의 교합

by 별사탕


장르 블랙 코미디, 범죄, 드라마, 스릴러

감독 알랭 기로디

각본 제작 샤를 질베르

출연 펠릭스 키실(제레미 역) 카트린 프로(마르틴 역) 장 밥티스트 뒤랑(뱅상) 세르주 리샤르(장피에르 역) 자크 드블레(필리프-신부 역) 다비드 아얄라(왈테르 역) 외

촬영 클레르 마통

편집 장 크리스토프 힘

미술 에마누엘 뒤플레

음악 마크 베르다거

의상 콜랭 다를레이

제작사 프랑스 국기 CG 시네마 안데레그라운 필름스 스칼라 필름스

개봉일 (칸)2024년 5월 24일, 2025년 7월 16일

화면비 2.35 : 1

상영 시간 104분 (1시간 43분 52초)


영화는 시종일관 욕망을 보여주지만 욕망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욕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제리미는 고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고향마을은 도시로부터 동떨어진 외딴 시골이다. 그곳은 마치 깊고 깊은 숲속 처녀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전원풍경이 펼쳐지고, 자동차는 길을 따라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 끝에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욕망에는 미추가 없다.

개인의 욕망은 타인과 대립적이기도 하고 협력적이기도 하다. 때로 불경(친구 어머니)하기도 하고, 때로 충돌의 비극(살인)을 낳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계(왈테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욕망은 모든 인간과의 관계 속에 섞여 있고, 그 욕망의 관계는 죽음과 재생산을 초래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 세상을 움직여 나간다. 욕망의 추동은 인간의 역사이며 삶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추할 것도 없고, 아름다울 것도 없다.

제레미의 얼굴을 한 욕망, 제레미의 얼굴을 통해 욕망을 보여준다. 그는 표정이 없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망은 하나의 얼굴만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미소년의 얼굴, 웃는 것 같지만 무표정한 것이며, 찡그린 것 같지만 감정의 변동은 없는, 그 얼굴은 어쩌면, 그를 바라보는 자의 얼굴일 수도 있다. 욕망은 욕망하는 자가 주인이며, 결코 제라미라는 주체를 가질 수 없다. 그러니 욕망은 언제나 다중 주체의 타자로서만 존재한다. 뱅상이 바라보는 제레미, 마르틴이 바라보는 제레미, 왈테르가 바라보는 제레미, 필리프가 바라보는 제레미까지, 모든 욕망은 타자로 현현한다. 내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너의 속에 있는 것이며 안에 있는 것 같지만 밖애 존재하는 것,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인 것, 세계이며 우주인 이것은 늘 우리 옆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자비는 나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욕망은 충돌과 화해, 그리고 용납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종교가 있다. 필리프 신부의 눈에 보인 욕망은 악마의 모습이다. 악마를 배척한다면 자신 속에 든 악마성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자신의 존재 근거인 종교 또한 부정하게 되는 골이 되고 만다. 욕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마성에 대한 용인이며 자신에 대한 수긍이며, 모든 세속에 대한 관용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맹목

종교는 정신이며 그것의 육신은 어머니다. 더럽고 추하며 아름다운 충동으로 가득찬 욕망이 가서 닿는 곳은 자식을 죽인 자식의 친구를 받아들이는 지점이다. 세속은 세속일 뿐이다. 세속이 영원의 종교와 연결되는 지점은 용서와 화해, 욕망과 사랑이 분별없이 뒤섞여있는 세계, 모성, 어머니를 통해서이다. 모든 생명의 씨앗은 여기서 만들어지고, 모든 성속의 혼돈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가 신의 사랑이라면, 마리아는 세속의 종교가 된다.


복음이 들려 온다

숲속에 들어가면, 멀리서 기계음이 들려온다. 오토바이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 멀리서 다가오는 듯한 그 소리는 전기톱의 모터소리다. 한 번, 두 번 몇 번의 장면에서 반복되는 그 소리는 관객을 화면 밖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일종의 소격효과를 낸다. 이 숲의 밖에 대한 상상, 먼 데서부터, 이 숲을 향해, 이 마을을 향해 무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마치 한편의 모노 드라마와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 작은 마을은 곧 사라질 것이고, 이 시골 마을은 도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전기톱의 모터소리는, 이 숲의 나무를 한 그루씩 베어 넘길 것이고, 그래서 악마가 건설한 ‘도시라는 악마’가 멀리서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미세리코르디아의 중간계는 다가올 세상을 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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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