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월광 소나타

by 별사탕

동네에 나가, 사거리에 서서 건너편 상가 쪽을 바라보면, 상가 건물 4층 한쪽 코너에 입주한 피아노학원이 보인다. 성인피아노 재즈피아노 이벤트 연주라는 간판글이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은 유리창 위로 붙어 있다. 크면서 피아노는 부의 상징이었다. 어느 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민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학교 가는 길에 뒷골목으로 들어서는 구간이 있었다. 시멘트 담벼락을 타고 지나갈 때마다 골목의 끝에서부터 골목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름모무늬를 넣은 벽체 위, 철망으로 방범창을 만들어 붙인 여닫이 나무창문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떤 곡인지 모르는 피아노 연주는 늘 격렬했고, 휘몰아치듯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론도로 달려 나가는 부분이었으리라. 그럼에도 피아노 소리는 시끄럽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 골목을 걸어가는 내내 발소리를 죽이며 연주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신기한 것은 피아노 소리와 함께 내가 늘 그 골목을 혼자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저건 분명, 연습곡으로 아침을 먹기 전 손가락을 풀기 위한 연주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아침부터 저렇게 많은 손가락을 써서 복잡한 소리를 내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손가락은 가늘고 예쁜 소녀의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TV만큼이나 귀했던 피아노가 있던 그 집, 부잣집의 그 소녀는 학교 가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았다. 국민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꿈같은 기억이다.

그러던 피아노가 다시 내 앞에 등장한 것은,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봤던 실기시험 때였다. 자기 번호가 호출되기를 기다리다가 계단식으로 된 음악실의 맨 앞으로 나가 배웠던 노래를 부르는 가슴 떨리는 시간이었다. 지정곡을 부르는데 대부분 끝까지 부르는 일은 드물어서 첫 소절에서 그만! 하는 소리와 함께 강제 종료 당했다. 우리들은 멋쩍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떨군 채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중간에 어떤 놈이 나와서 듣지 못했던 외국어를 말을 했고,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그 친구는 곧장 피아노 쪽으로 걸어가 의자 위에 반듯하게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연주는 음악실에 있는 모든 눈동자가 한 곳을 바라보게 만들었고, 모든 귀는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소리를 향했다. 처음부터 격렬하게 진행된 피아노소리가 와르륵 와르륵 거리는가 하면, 한 음 한 음이 제각각으로 튀어 달아 나듯 했다. 그리고, 건반을 깨부수듯 와장창 와장창 거리며 마지막 건반을 두 손으로 내리눌렀을 때, 숨죽였던 음악실은 어떤 여운도 없이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그때 뒤에서 조용하고 느린 박수 소리가 터졌다. 음악 선생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구나.


종이 치고 밤톨 같은 까까머리 아이들이 음악실을 와하고 빠져나갔고, 나도 그들 틈에 섞여 그렇게 피아노 소리를 내 머릿속 한 켠에 욱여넣어야 했다.


살면서 수많은 음악을 들었다. 의식했든 그러지 않았든 눈을 뜨면 음악은 늘 귓속을 파고들었다. 라디오와 길거리에 넘쳐났던 노래와 음악들은 내 삶의 여백을 채워주었다.

어느 늦은 밤, 그 시간은 분명 10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이종환의 방송이 나왔으니까, 그 방송에서 졸린 눈을 뜨게 하며 소름 돋게 했던 노래가 작은 트랜지스터에서 흘러나와 이불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넋두리 같은 목소리가 사라지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가수의 목소리가 따라 나왔다. 한 사내가 인적 없는 밤 길에 홀로 서서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흥얼대는 소리로 부르는 노래였다. 목소리는 메말랐고, 담담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숙명의 목소리였다. 이브 몽땅이라는 이름을 나중에 알았다. 얼굴은 '마농의 샘'이라는 영화에서였다. 음흉한 악인의 모습, 초췌하고 추한 늙은이로 분한 모습이었다. 도저히 그런 캐릭터로 볼 수 없는 잘 생긴 신사의 모습이기도 했다.

영어 제목 'Autome Leaves'으로 번역된 '낙엽(Les Feuilles Mortes)'은 1946년 이브 몽땅이 '밤의 문'이라는 영화에서 불러 대중에게 알려진 노래였다. 카페에서 하모니카 반주에 이브 몽땅이 그림을 그리며 흥얼거린 노래였다.


“이 노래는 우리와 닮은 노래예요.

당신은 날 사랑했고 난 당신을 사랑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았지요


날 사랑한 사람은

당신이었고 당신을 사랑한 사람은 나였지요

하지만 삶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아버렸네요


아무 소리 없이 천천히

바다는 모래 위에서 사라져 버리고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국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네요.”


나는 이 노래를 피아노반주를 넣어 불러보고 싶다. 이 노래의 상황은 마치, 강효실이 언젠가 TV에서 '세월이 가면'을 부른 것과 같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 대한 회한을 담아 지난날을 추상했듯, 그녀의 아픔이 아프지 않게 고스란히 가슴에서 가슴으로 와닿게 하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제 나에게도 그런 사연이 하나쯤 생겨서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가 싶다.


고엽이 그랬던 것처럼, 'my way' 또한 프랑스 노래가 원작이다. 클로드 프랑수아가 부른 '꼼 다비튀드(Comme d'habitude)'가 그것인데, 이 경우는 시나트라의 노래가 더 낫다. 이찌 살다, 노래 한 곡쯤은 가사지를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사를 외웠고, 어느 자리에서나 노래를 청해 불러야 할 일이 있다면 꼭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노래 잘하는 오빠가 왔다고 외려 몇 번이나 단골 에이스의 초이스를 받은 기억에 실력을 뽐내며 폼 잡고 우쭐했던 기억이 남는 노래, 이제 그 노래를 반주 넣어 차분하게 내 목소리로 한번 부르고 싶은 것이다.


이제 마지막은 베토벤의 월광이다. 혼자 신창에 앉아 있노라면, 아무도 오지 않는 한적한 시간도 좋고, 일부러 브레이크 타임을 만들어 심신을 축축 늘어뜨려 처연하게 만들고 싶다. 고요하게 명상에 잠겨 음률을 따라가 보고 싶다. 손가락들이 그 음률을 타고 속울음을 삼키며 옛날을 그리워하고 싶다. 내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이전으로, 우정과 사랑이 넘쳤던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 뿐, 단지 그것뿐, 내겐 아무런 후회도 속죄도, 그리움의 대상도, 그리움 그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던 옛날의 모습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내 길이라는 것을 쉼 없이 나에게 상기시키며 하나하나의 음을 건반으로 또렷하게 치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내 머릿속의 기억처럼 그렇게 나는 월광에 기대어 지하실, 카페 신창의 어둠 속에 앉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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