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겨울에 입대한 나는, 햇수로 4년이 지난 봄에 제대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겨웠던 일은 단연 구보였다. 매주 전투체력의 날인 수요일 아침 빠짐없이 10km 구보를 했고, 본부중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 산악구보를 했던 때가 있는가 하면, 중대장의 짚차로 측정한 거리를 단독군장으로 정확히 40분 안에 완주하도록 훈련을 하기도 했다. 낙오한 병사가 간혹 나왔는데, 그는 철모를 개머리판에 까이고 전투복의 앞섶이 풀려진 채, 집총해야 할 식스틴을 전우의 어깨로 넘긴 후 팔다리가 퍼져 목도 바르게 가누지 못한 상태로 부대로 끌려 들어왔다.
저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부대원들은 낙오자가 어떤 상태인지 관심이 없었고, 그가 위병소를 통과해 들어올 때까지 땅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원산폭격을 하고 있어야했다. 구보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전우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전투였다.
낙오한 병사가 허파호흡을 하며 위병소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우리 모두는 거꾸로 보이는 하늘 아래로 쳐다 보았다. 대열의 맨앞에 끌려온 그는 우리와 똑같은 자세로 원산 폭격에 들어갔다. 그의 행동은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그는 다시 낙오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가 누구였는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들 한하나가 모두 전우였다. 그렇게 서로 달랐던 사람들은 섞였고, 하나로 동화되었고, 끝에는 전우로 불리는 한 덩어리가 되는 과정을 살아냈다.
평소에 입었던 옷 그대로, 부대마크도 계급장도, 그렇다고 예비군 마크도 달아주지 않는 군모를 쓰고 사회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집근처에 새로 생긴 백화점에 들러 아피스인지 파커인지 모를 만년필을 한 자루 샀고, 정종 댓병을 한 병 샀다. 만년필은 나를 위한 것이고, 정종은 젯상에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선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당연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채송화와 금잔화, 맨드라미들이 담장 아래 테두리처럼 빙 둘러선 마당 한가운데 꽃들과 풀들 위로 햇살이 한가득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식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들어왔고, 나는 제대의 기쁨을 식구들과 공유했다. 그렇게 썩 밝고 유쾌하지 않은 집안 사람들의 특성상, 그저 한번 쓱 보고 씩 웃어보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환영방식이자 기쁨의 표현이었고 그 표정들은 서로를 보고 배운 학습의 결과라는 것을 그 때는 잘 몰랐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를 한 나는, 달리기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 오래달리기에는 그야말로 젬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단거리에 특화된 몸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었다. 축구로 다져진 다리는 순간적인 속도를 내는데 적합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생긴 몸에 대한 관심은 덤벨을 들고, 웨이트를 하는 일을 즐기게 만들었다. 176이었던 키가 180이 된 것은 중3때였다. 그리고 유도를 시작하면서 몸이 불기 시작했다. 68kg이 76kg이 되었다. 몸이 단단해지고, 팔다리가 마음먹은 것 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전 경험들을 통해 몸은 더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제대하면서 다시 68kg이 되었다. 그건 순전히 구보 때문이었다. 10km를 40분 안에 들어와야한다는 의무가 매주 나를 괴롭힌 것보다, 낙오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나를 괴롭힌 것 때문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장거리 구보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학교앞 사거리의 신호가 바뀌자 내 뒤에 섰던 사람들이 나를 휙휙 지나쳐갔다. 그때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절대 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내 사전에 구보란 없다.
30년이 지났다. 세상이 변한 만큼 나 역시 변했다. 인생의 쓴맛은 말년에 닥쳐오는 것 같았다. 병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툭툭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늘 곁에 두었던 사람이 스스로 내 곁을 떠나갔다. 극단적으로,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지나가는 사람 손을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갔다. 비바람에 찢어진 창호지를 다시 붙였고, 필요하면 문풍지도 틀에 맞춰 바깥으로 덧대어 붙였다. 그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그대로 살았다. 어떻게 되는지 나 자신이 나를 두고 보는 시간이었다. 풍상에 퇴적되는 하나의 물상을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60이 넘었다. 나는 예전처럼 산길을 뛰어 다닐 수는 없지만, 천변의 수변도로가 잘 되어 있는 동네에 살고 있는 장점을 살리고 싶다. 조금씩 삶을 재건하듯 다시 힘을 내야 한다. 달리면 뱃살에 들어찬 지방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식전 시후에 달려야 한다. 그래서 멈춰가는 심장을 당분간 더 뛰게 해야한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기 때문에 부정맥을 수술하고 심장 안에 든 혈전을 떼어내고, 막혔던 관상동맥을 뚫었다.
단지 건강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생길 것 같다. 산 능선을 타고 적지에 잠입한다거나, 스텔스보트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내륙으로 잠입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그런 일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꼭, 처리해야 할 일, 그건 오래묵은 숙제 같은 일이었다. 그걸 방치해 두고서 살아온 나는 늘 목구멍 안쪽에 큰 덩어리를 넣고 산듯 했다. 점점 그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그래서 체력을 키우고, 몸을 가볍게 만들고, 이왕 하는 거 식스팩을 다시 배에 붙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 목표라면 최소한 배에 왕자는 어렴풋하게 새겨질 것이다.
이건 내가 그동안 쌓아둔 업을 정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야할 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며, 이제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번뇌와 얽힌 조바심으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듯 편안한 얼굴이 되고 싶다. 모든 세속의 얽힘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죄로부터 벗어나는 일, 악업을 풀고 새로 연을 맺지 않으며, 왔던 상태 그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전한 마음 뿐이다. 구도하듯 나는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