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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코프 중단편집

by 별사탕
레스코프1.jpg 니콜라이 세묘노비치 레스코프(1831년 2월 16일 ~ 1895년 3월 5일)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러시아 문학의 원류와도 같은 사람이다.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 전승되었던 노래들을 민요라 부른다면, 그 민요를 수집 채록한 자들이 나와 집대성한 공로가 있으며, 그의 업적은 훗날 대중화된 노래로 발전하여 산업화하게 된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레스코프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고, 그렇게 듣고 본 이야기들을 슬라브민족 특유의 정서로 써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에 대해 톨스토이 체호프 투르게네프 등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찬양한 레스코프의 이야기들은 러시아어 고유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는 밑바닥 언어들이었다. 과거에 그처럼 민중들의 생활을 그들의 언어로 담아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레스코프의 이야기들은 러시아 민중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었다. 설화가 기록이 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리스코프의 언어는 이후의 대문호들에게 거름이 되고, 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우리 앞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1. 세상 끝에서

러시아 정교회 주교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주체가 나와 실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은 이야기 현장을 그대로 글 속에 옮기는 방식으로, 이야기 상황을 관찰하고 있는 목격화자가 이야기 주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라는 액자식 구성의 원형을 보여준다.

주교가 관장하는 교구성당에 키리아크라는 신부가 등장한다. 이 신부가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다. 액자 속 이야기의 주인공. 그는 이방인에게 선교하지 않는 것으로 괴이한 신부로 소문이 나있다. 신부의 고유한 업무인 신자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소수민족에게 선교하지 않고 그에 따른 세례도 행하지 않는, 그를 불러 주교는 대화를 나누고 오지로 선교여행을 떠난다.

그와 나누는 대화는 대개 이러하다.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지 않는 이유는 선교를 하게 되면 그들이 믿는 신으로부터 현실의 삶을 이어나갈 수 없는 알박을 당한다는 것이다. 라마교 승려가 와서 때리고, 촌장이 와서 생필품들을 모두 압수해 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생활을 못하게 한다는 것. 거기에 성당의 신은 자신들을 구원해 주고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도 있을 수없는 일이라며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하면,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은 그 상대방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하며 그 사람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개념을 확고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의 세계관에 입각한 소위 예수의 대속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선교도 안 되고 세례도 줄 수 없는 이유라는 것.

단순 명료한 원주민들의 윤리관이다. 이것을 세련된 종교가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다. 이것은 원시 원주민들의 사고방식을 말해준다. 또한 작가 레스코프는 암시한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며, 그 믿음의 마음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2. 강도

대단히 명징하게 사건의 정황이 묘사되고 있는 이야기.

온마을이 강도들로 가득 찬 19세기 러시아마을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묘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강조짓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시골파출소의 정경이 오히려 정겹다. 간밤의 한바탕 소동을 통해 러시아인들의 어진 마음들이 잘 드러난다. 결국 이 모든 소동이 신의 축복 아래 허용되고 있다는 종교적 신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3. 보초병

위병은 지정된 장소를 벗어날 수없다는 군법, 하천에 빠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 군법을 따르자니 사람이 죽고, 인정을 따르자니 중벌을 받는다. 난감한 상황이다.

이야기는 정리한다. 비록 사람을 구했다는 공은 약빠른 엉뚱한 놈이 채갔고, 초소를 벗어났다는 군법위반으로 태형 200대를 맞았지만, 선한 일을 했음에도 그런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도 '선 자체를 위한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유한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화자는 표한다. 그들에게 이 이야기가 위안이 되리라.


4. 천재 노인

사기꾼을 잡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신분을 이용해서 선량한 사람의 등을 쳐먹는 일을 하며 여자를 후려 평생 놀고먹으려는 건달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귀족 룸펜에 대한 비판이 은근하다.

이야기인즉슨, 시골에 사는 노파가 전부터 알고 지내던 귀족이 잠시의 곤란의 호소하자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준다. 사실 귀족은 노름빚으로 허덕이고 있었던 것. 페테르스부르크에 돌아가면 금방 줄 것처럼 말하던 귀족은 갚아야 할 기한이 가까워오는데도 소식이 없다. 그래서 노파는 상경하여 이 귀족에게 소송을 걸어 갚으라는 판결을 받아 낸다. 그러나 법원 집행 판결문을 귀족에게 송달해야 채무의무가 법적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 문제는 이 귀족이 여자와 동행 이 나라를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그래서 한사코 우편물을 수령하지 않으려고 도피 중이다. 이를 알고 온갖 방면으로 우편물을 받게 하려고 인편을 수소문하지만 기 비용이 터무니없어 배보다 배꼽이 큰 형편이다. 그때 허름한 술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이 도와주겠다고 하며 헐한 비용을 제시하고 동업자 한 명이 더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일을 실행한다.

세르비아 군인을 동업자로 채용한 노인은 이 귀족을 찾아다니다가 기차역에서 발견하고 사정없이 뺨을 때린다. 경찰이 쫓아오고 폭행 가해자와 피해자고 파출소에 연행되고, 신원 조회 결과 당연히 이 귀족이 그동안 저지른 모든 사기 범죄행위가 드러났다. 그렇게 사건은 일사천리, 경찰관에 의해 자연스럽게 서류송달이 이루어졌고, 노파는 돈을 돌려받게 되었다.

러시아 사회의 부조리와 그것을 해결하는 반짝이는 노인의 지혜를 재미있게 썼다.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순박한 민중들의 삶, 그 반대편에 있는 귀족과 왕실의 생활, 우리의 구한말을 연상케 한다. 나라가 어지럽다는 암시는 없다. 그저 생활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상, 그 속에 숨겨있는 그들의 속마음, 이런 것들을 짐작할 수 있다. 관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뇌물수수(러시아는 지금도 거리에 있는 경찰이 대놓고 뇌물로 먹고 산다.), 거리에 횡횡하는 강도, 그런 중에도 굳게 신앙심을 지키며 인간의 마음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민족 국가가 가지는 날 것 그대로의 혼란스러움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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