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목적은 질서 유지다. 인간 스스로 지켜야한다는 강박을 주사하는 기제다. 그래서 윤리는 내면화된다. 그렇게 작동 시스템은 자동화되는 것이다.
물리적 연결이 마구 잡이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유전자는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자체는 그런 기능이 없이 순수하지만, 생존이라는 하나의 기능을 위해 유전자끼리 연결 조합하는 것이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보호장치를 구동시키는 것이다.
보호막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게 얇은지 두꺼운지는 개인차가 있는 것이고, 그 집단의 관습적 환경이 막의 두께를 결정한다. 먹이 사슬의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제한 윤리의 태두리는 느슨해지고, 인간 본래의 본능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물리적 연결을 지배하는 것은 윤리이고, 본능에 속하지만 깊이 통제받게 되는 것이다. 본능이 억압되면 기형적 인간이 탄생한다. 모든 연쇄살인에 성적 억압 코드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숭고화된 가짜 연결들이 물리적 연결의 비극을 얼마나 가속화시키고 미화시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름다운 시스템에 발생하는 버그, 부작용 같은 것이다. 이것은 살인이 본능이라고 잘못 인식할 수 있는 요소다. 살인은 억압에 대한 극단적인 방어기제다. 물리적 연결에 대한 억압이 얼마나 기형적이고 극단적으로 치닫는지 범죄사를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자신의 주변을 둘러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는 각종 히스테리적 행동반응으로, 남성에게는 과잉 폭력양상으로 생활에 드러난다. 이 모든 이상 반응은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파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물리적 연결은 억압되고, 윤리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인간을 통제한다.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행복에 이른다. 극도의 절제가 이루어 내는 기쁨은 자연에 반하는 인간만의 것이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수고로 이룩한 성취물에 극한의 쾌감을 느끼는 존재다. 그런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현인 철학자가 되라고 한다면 이는 인간을 가장 빠르게 멸종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