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안드류 저, 조희문 역, 한길사, 1988
크라카우에르는 From Caligari to Hitler(1947)와 Theory of Film(1960)을 썼다. 그의 인생 중 40년간 영화를 본 후 그것을 데이터화한 결과물로 영화이론서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이론의 특징은 내용을 중시한 소재미학에 있었다. 영화를 소재와 영화적 표현기술의 복합체로 보고 소재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 영화의 소재인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가장 심오하고 본질적이라고 본 그의 이론이 소박한 리얼리즘론의 근간을 이룬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표현 수단을 기본적 요소와 기법적 요소 둘로 나누었다. 기본적 요소는 사진과 일치한다. 즉, 현실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조형주의 이론가들이 이런 기본적 요소를 중시하여 그것을 분석 이론화했지만, 크라카우에르는 그것을 '기본'(본질)에 넣어버림으로써 딱히 분석의 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이것이 그가 조형주의이론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다.
기법적 요소는 주로 촬영기술과 그 효과를 말한다. 편집, 클로즈업, 렌즈를 통한 왜곡 촬영, 특수효과 등이다. 이러한 기법적 요소는 기본적 요소를 위해 존재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내용주의자가되는 것이다. 기술이 기본 요소인 현실을 왜곡하는 것을 거부하여 아른하임이 주장한 적극적인 기술의 적용도 거부했다. 영화가 단지 촬영기술 쪽으로 기울면, 달리 말하면 표현주의적 기법이 과다하면 그건 단지 오락물에 불과하다는 입장으로 고수했다.
모든 예술이 내용과 형식의 갈등이 발생하는데, 영화는 둘의 갈등에서 내용이 우위에 있는 최초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리얼리즘과 조형주의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이상적인 영화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그런 가운데 영화는 독자적인 특성을 발현해 나가는 쪽으로 발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영화제작자의 의도가 대단히 중요하다.
제작자는 현실 세계를 찍고 그것을 의도에 따라 재배치한다. 따라서 의도는 구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여러 영화장르 중에서도 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영화를 독립적인 예술의 특징을 가지게 하는 요소가 스토리다. 스토리는 다큐멘타리에서도 관객의 참여를 유도(플라허티의 다큐멘터리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연출된 장면을 찍었다.)할 수 있는 중요 요소로 볼 만큼 예술성의 근간으로 취급한다.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자연의 흐름, 스토리영화가 추구하는 자연의 재배치 즉 구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이상적인 영화가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영화를 연극영화, 각색영화, 스토리영화로 나누었다.
연극영화는 단지 연극 무대를 카메라로 찍는 것에 불과한 무성영화시대의 허리우드 영화를 가리킨다. 각색영화는 문예영화를 말하는 것으로 문학이 표현하는 기법과 영화의 기법이 서로 다른 것에서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스토리 영화는 항상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추상적인 개념, 관념을 화면에 구성해 내는 것은 스토리 영화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크라카우에르의 리얼리즘론은 영상을 스토리로 엮기 위해 특별한 구성을 사용하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유의미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영화가 현실을 리얼리즘적으로 그려낸다는 것의 의미를 크라카우에르는 그렇게 본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목적도 대상이 지닌 자연적 본질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인간의 관념을 현실세계와 일치하도록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보편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결국 인간 사회를 평화와 조화로 가꾸어 낸다는 것이다. 즉, 영화는 특수한 이데올로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이상적 세계를 건설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증명하기 곤란한 문제
1.영화는 편집, 조형 보다 사진적 요소가 중요하다.
2.사진은 표현 대상을 변형 변질시키지 않는다.
3.영화는 대상과 사건을 표현해야 한다.
이 순박한 크라카우에르의 주장은 미메시스 이론을 정립한 아우어바흐의 이론과 닮아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과거에 대한 보존 계승의 인식
2.표현방법에 대한 성숙한 인식
두번째 공통점에서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을 언급한다. 그것이 리얼리즘적 기술방식이라고 불렀고, 그러한 방식을 다른 방식보다 우위에 둔 크라카우에르는 리얼리즘의 추종자로 변모했다.
이후 50년대에 이르자 '카이예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등장한 일련의 영화인들, 트뤼포,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 에릭 로머 같은 사람들은 크라카우에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시도를 했다. 소설을 영화하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나레이션)가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크라카우에르의 이론과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세트장에서 찍은 것보다, 자연에서 찍은 필름이 더 원작에 가까웠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쟁, 브레송 등 뒤에 나타나는 영화인들을 통털어서 이제 영화는 어설픈 매체이론 정착기, 혼란기를 지나, 조형주의나 소재주의보다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는 쪽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하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