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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한정림 역, 정은문고, 2024

by 별사탕



정은 문고에서 책이 왔다. 계엄, 일본인 영화학자가 쓴 한국 체험담이다.


작자는 요모타 이쿠히코, 53년생으로 영화사를 대학에서 가르친 문화비평가다. 그가 도쿄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 건국대학교 일본어학과에 일본어 회화 강사로 초빙되어 1년간 한국생활을 경험한 이야기를 썼다. 1979년 4월부터 한국에 체류하면서 1980년 3월 전에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1년간 한국 생활을 한 일본인 청년 지식인의 경험을 썼다. 작자의 체류기간의 말기에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하고 계엄이 선포되는 사건이 터진다. 그 1년 동안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바라본 것, 그렇다고 딱히 일기 같은 기록문도 아니고, 딱히 소설도 아닌 저작물이다. 드라마로 치면 일종의 모큐 드라마, 실화 소설 같은 장르다.


이 책을 통해 유의해 볼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옆나라의 관점

그들은 한국인을 외국으로 보고 인상을 쓴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인이 보는 한국인과 외국이 보는 한국인에는 온도차가 있다. 그건 단지 온도차다. 한 사람의 내면 풍경을 샅샅이 아는 사람이 이해하는 '그 사람'과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온도차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행동 방식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과 생각은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당연히 다르지만, 그것을 어느 것 하나는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이기 때문이다. 안에서 하는 비판은 비논리적인 감정이 주를 이루며 죽일듯하지만 정말로 죽이지는 않는다. 온정이 깔려있다. 그러나 밖에서 하는 비판은 이성적인 양상을 띠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로 다룬다. 죽인다고 말하면 실제로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은 사실이기 때문에 어떤 극점에 다다를 수도 있다. 한편, 유효성의 부분들은 범주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1979년의 현실을 묘사하는 내용 중, 일본의 잔재가 사회 전반에 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기성세대의 대부분이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고, 일제 시대의 문화적 풍경을 동경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장면들은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대화와 인식의 문제 중,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문제를 난센스로 언급하는 것은 비상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도에 대한 영토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화된 것이 그 시대였기 때문이다. 80년의 국풍을 타고 82년에 '독도는 우리 땅'이 나온 것이었다.


우리 자신을 외국인으로 대상화하여 그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 던져주는 외국인으로서의 낯선 한국인의 얼굴을 보여준 것처럼 한국인 독자를 독특한 경험의 세계로 이끈다.


2. 민주주의와 한국을 걱정하고 연민하는 외국인

사정없이 싸우다가,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옆에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난다. 그런 외국인들을 우리는 역사 안에서 꽤 자주 만났다. 구한말 대한제국이 촛불로 광풍을 마주하고 섰을 때도 그랬고, 포격을 가하고 비행기를 날리며 사정없이 서로를 죽일 때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준 사람들이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투사를 위해 먼 나라의 사람들은 구명운동을 펼쳤고,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될 때 누군가는 누구를 숨겨주었고, 누군가는 누구를 태우고 총성이 들리는 시내를 빠져나와야 했다.


그들 중에는 일본인도 있지 않을까, 소다 가이치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일본처럼 고대에서부터 역사적 특수관계에 얽혀있는 경우는 정말 애증이 교차하는 그 이상의 감정이 섞여 일정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로 볼 것인가, 인간으로 볼 것인가, 어느 것으로 보든 서로에게 편견은 존재한다.


역사든, 인간이든 변함없이 사실인 것은 현재라는 시간이다. 이 지금이라는 시간에 모든 것에 대한 답이 있다. 과거로 간다든지, 미래로 간다든지 있지도 않은 시간여행을 해서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답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저자가 가진 시각은 현재에 있다. 과거로부터 시간이 흘러가면서 도달하고 있는 곳은 바로 '지금'이다. 10년을 보낸 것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지금의 한국과 한국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에필로그의 장에 작가가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이 있고, 그것은 마치 앞에서 펼친 길고 지루했던 서사를 단숨에 따라잡아 휘몰아치는 폭풍의 호흡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엄한 마무리와도 같이 보인다.


3. 번역의 문제

일본어투, 일본식 표현, 한국의 현실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안 썼을 텐데 하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피동표현이 일본어 문장의 특징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대종상의 수상등급에 '차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거나, 자음접변 구개음화현상을 일본어식 용어인 '음편'으로 쓴다거나, 돈 다발(한국돈 다발)을 원(화) 다발로 그냥 썼다든가 하는 구체적 표현들이 그렇다. 또한 춘장 소스는 '뿌려' 먹는 게 아니고 '놔서' 혹은 '얹어' '올려' '비벼서' 먹는다고 해야 한다.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나 쓰는 '사갈'이라는 단어를 일상의 표현으로 쓴다거나, 청계천을 우리말에서 쓰지 않는 '속도랑'으로 표현했다거나,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눈에 띄는 것은 번역이 더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방불하는 문장을 사용하여 친근감이 드는 것은 큰 장점이다.


4. 문학적 설정, 주인공이 22세

주인공은 중앙정보부에 가서 일본어 회화 심사를 하는 일, 하길종의 부고를 듣고 그의 부인 전채린을 만나는 일이 22살의 일본어 회화 강사에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다. 실제로는 27세의 도쿄대 박사과정 재학생인 것이 더 현실감 있음에도, 요모타 이쿠히코는 굳이 22세의 주인공으로 인물 설정했을까. 그것은 1950년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라는 소설이 발표되면서 불러온 목적 없는 방랑과 배회의 문학이 끼친 영향이라 볼 수 있다. 기성세대에도 끼지 못하고 삶의 지향점도 불확실한 청년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한 자유주의자가 도달하고 싶은 그곳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이 이야기의 현실성을 깎아내리고 있다.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한다. 1년간 벌어진 이야기가 재미있게 잘 읽힌다. 무겁지 않지만 주의 깊게 들을만한 말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는 허무맹랑한 말도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말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고 옆으로 새나간 말들이 있다. 그만 쓴다, 빗 맞추면 목사도 중도 다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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