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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Oct 11. 2023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자료상)

술술이세무사

"아니, 세무사님 우리는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며칠 전에 안내한 부가가치세 금액에 놀라셨는지, 거래처 대표님의 볼멘소리가 수화기에 쏟아진다.



"부가세 금액에 문제가 있을까요?"


"여기저기 물어보니까 나처럼 이렇게 세금 내는 곳이 없던데요?"


"잠시만요, 자료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매출공급가액 7억 원 - 부가세 매출세액 7천만 원

매입공급가액 4억 원 - 부가세 매입세액 4천만 원

납부세액 3천만 원 = 7천만 원 - 4천만 원

해당업체는 법인으로 매출, 매입 모두 전자세금계산서로 발행되기에 매출이 과다하거나 매입이 과소하지 않은 이상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매출, 매입내역 전자세금계산서로 다 발행이 되었거든요."


"그건 알죠. 매출매입은 맞는데, 다른 데는 그렇게 안 나오던데? 우리랑 2~3배 차이가 나더라고"



업체마다 규모나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세금금액 차이만 갖고는 세금을 더 낸다고 해서 잘못된 상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른 곳과 어떤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세금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표님도 잘 아시다시피 부가세를 줄이려면 방법이 두 개가 있습니다.

1번은 매출을 줄이는 것

2번은 비용을 늘리는 것

그런데 매출은 줄일 수가 없는 거죠? 줄여서도 안 되는 것이고요. 매출을 누락하면 모를까, 그런데 법인들이랑만 일하니 매출 세금계산서는 꼭 발행하셔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비용을 늘려야 하는데, 이건 돈을 써야 하니까요, 꼭 필요하거나 투자할 것이 있으면 모를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새로 세금을 줄이자고 쌩돈을 쓸 수는 없구요."


"그것도 맞죠."


"받야 하는데 못 받은, 매입처에서 아직 세금계산서를 발행 안 해준 건은 없나요?"


"세금계산서 못 받은 업체가 두어 군데 있긴 한데, 내가 아직 돈을 안 줘서.."



부가가치세법상 세금계산서 발행시기는 재화, 용역의 공급이 완료된 시기, 한마디로 물건을 받거나 일이 끝나면 대금지급여부와 관계없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영세 사업자 간의 거래에 있어서는 대금수령일을 기준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있다.


'세법 위반 아니야? 저런 괘씸한!'이라고 혹자는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건설업 같은 경우는 돈을 떼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세금계산서부터 발행했다가 돈도 못 받고 세금은 세금대로 내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세법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곤란한 상황이 많다.




세금계산서는 사업자가 제15조 및 제16조에 따른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시기에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받는 자에게 발급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부가가치세법 제34조 제1항)으로 이는 대금의 수령여부와 무관하다.




"그래서 다른 업체와 차이가 있었나 보네요."


"그건 금액이 얼마 안 돼서.. 아무튼 세무사님 그런 건 안되나? 세금계산서 필요하면 더 끊어주다고 하는데, 요새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가지고"


"세금계산서를 돈 주고 사 오는 거 말하시는 건가요?"


"그거요, 돈 좀 주면은 사 오고 그러던데"



필시 '자료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표님, 그런 거 하시면 큰일 납니다."


"왜요?"


"저희 같이 생각을 해볼까요?"


납부할 세금 3천만 원

3천만 원이 많다고 한다면 적어도 500만 원~1천만 원은 세금을 줄이고 싶어 할 것이다.

이 경우 필요한 매입세금계산서는 줄이고 싶은 부가세의 10배인 5천만 원~1억 원짜리가 필요하다.


줄어든 세금 1천만 원

부가세 1천만 원을 줄이기 위해 1억 1천만 원(부가세포함) 짜리 세금계산서를 300만 원에 사 왔다고 가정해 보자.

3백만 원으로 부가세 1천만 원을 줄였으니 최소 3배 이상 이익이고,

추가 매입 1억 원을 법인세 신고 시 비용으로 처리한다면 법인세를 1~2천만 원까지 줄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3백만 원 투자로 최대 10배 이상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장사인 셈이다.


이러면 삼성이고 LG고 리나라에서 제대로 부가세, 법인세를 내는 회사가 한 군데라도 있을까?


자료상

저렇게 실물 거래 없이 세금계산서를 팔고 다니는 업체를 '자료상'이라고 한다.

자료상 입장에서 위 거래를 생각해 보면

3백만 원 받아서 부가세 1천만 원을 내야 하고

법인세 1~2천만 원(소득세라면 2~3배 이상)을 추가로 내야 한다.

따라서 '애초부터 세금 낼 생각이 없다.'라고 볼 수 있다. 


자료상은 업체 수백 곳에 세금계산서를 무차별적으로 팔아버리곤 현금을 두둑이 챙긴 뒤 날라버릴 것이다


국세청

세무서에서는 체납세액이 큰데 연락도 되지 않고, 사업유지도 의심스러운 자료상 업체를 조사하게 되고

얼마 안 가 당 업체가 자료상이며 모든 거래가 허위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종국에는 자료상과 거래한 업체에 대해서도 세무조사가 확대되며 이때는 탈루세금만 추징되는 것이 아니라 조세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자료상과의 거래금액에 따라 사업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세법 처벌법

제3조 제1항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하거나 조세의 환급ㆍ공제를 받은 자는 2년(3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세액, 환급ㆍ공제받은 세액(이하 “포탈세액등”이라 한다)의 2배(3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제10조 제3항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지 아니하거나 공급받지 아니하고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거나 발급받은 행위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공급가액에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세액의 3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이렇게 세금 몇 푼 줄이려다 패가망신할 수가 있습니다."



일장 연설이 끝났다.

쉽게 던진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을까?

잠시 말문이 막힌 대표님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겁만 주지 말고,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없어요?"


".."


"다른 세무사들은 다 줄여 준다던대?"






얼마

세금 못 줄이는 능력 없는 세무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업체는 다른 세무대리인에게 이관되었다.


쩝..


세무비용을 지불하는 거래처와 세무대리인인 세무사는 아무래도 갑, 을 관계에 있다 보니 가급적 갑의 요구를 들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을이 입장이라도 세금 때문에 고민하는 납세자에게 탈세를 안내하거나 이를 방관하는 것은 더 이상 세무대리인이 아니라 범죄의 공범이 될 뿐이다.


탈세는 마약중독처럼 순간의 쾌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납세의식 자체를 바꾸성실한 세금납부를 어리석고 멍청한 짓으로 생각하 만들고

그렇게 계속 탈세행위가 이어지다 보면 세금을 아끼려다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세무을 하다 보면 다짜고짜 전화로 세금을 얼마나 줄여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업체의 재무상황이나 손익구조를 모른 체 세금을 얼마로 맞춰주겠다는 세무대리인도 있다.

나 역시 돈이 우선이라면 이런 일 저런 일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 처리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창문밖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보며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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