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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Sep 27. 2023

국선변호사보다 국선세무사? 2 (국선대리인)

술술이세무사

1편


첫 전화통화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청구인의 전화가 핸드폰에 울렸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셨을지, 그 마음 십분 이해하나

잘하라고 격려와 응원을 하셔도 모자랄 마당인데..

항상 격해진 감정으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주시니 통화 때마다 받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명의대여사건 자체가 돈 받으면서 하기도 힘든 일인데 돈 대신 욕을 먹어가며 봉사하고 있으니,

일도 일이지만 멘탈을 잡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올해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을..

운도 지지리 없지 ㅠ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담과 스트레스만큼 책임감이 강해졌다는 것일까?     

평소에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의 경우는 청구인과의 호감도와 관계없이

‘사람 하나 살려낸다’는 생각으로 과정보다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국세심사위원회까지 여유시간은 7일 남짓     




국세심사위원회

불복청구사항을 심의 및 의결하기 위해 세무서, 지방국세청 및 국세청은 각각 국세심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위원회가 열리면 소속 심사위원은 심리과정을 통해 과세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 표결하여 불복청구의 채택 또는 불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국세기본법 제66조의2)     

일선 세무서 국세심사위원회의 경우 의장(세무서장)과 세무공무원 2인 그리고 민간위원(전문자격사 등) 4인, 총 7인으로 구성 다수결로 채택여부를 표결한다. (국세기본법 시행령 제53조)




남은 기간 동안     


청구인과 실사업자와의 전체 문자내역 중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부과된 세금에 대해 실사업자가 본인이 납부하겠다며 청구인의 신고를 만류하는 내용이 다수 발견됨)


명의자의 홈택스와 온라인 쇼핑몰 회원정보에 저장된 이메일주소와 연락처를 확인해 본다.

(명의자가 아닌 실사업자의 연락처로 저장되어 있었음.)


통장거래내역을 보니

입금된 쇼핑몰 정산내역은 전부 은행 CD기를 통해 전액 출금이 이루어졌는데 거래은행이 명의자의 거주지와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상 거리인 것을 확인하였고, 출금액은 전부 실사업자의 특수관계인에게 입금되었다.

(고령의 청구인이 먼 거리에 있는 은행지점까지 방문해 CD기로 출금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고, 예금의 입금계좌를 통해 소득의 귀속자가 실사업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음.)


청구인이 실사업자로부터 받기로 한 월 3만 원의 명의대여 대가도 2번밖에 받지 못했다.

(청구인과 실사업자가 소득을 공유했다고 보기 어려움)


등등


최대한 모으고 모은 증거자료와

이를 바탕으로 할머니의 억울한 마음을 녹여낸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사유서를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갔다.






어느덧 국세심사위원회 당일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 후

아끼는 양복과 넥타이를 착용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첫 면접 때의 긴장, 설렘일까?

오늘은 가장 신뢰감을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관할세무서에 도착해 납세자보호실로 들어갔다.

전화통화만 해오던 할머니와의 첫 만남.

상상했던 괴팍스러운 할머니의 모습은 온대 간데없고 작고 여린 할머니 한 분이 손을 꼭 잡아주신다.

         


“세무사님 잘 부탁드려요.”     


‘할머니 그렇게 화 안 내셨어도 열심히 준비했을 것인데, 왜 그리 사람을 힘들게 하셨나요?’

목구멍을 넘어오는 말을 꿀꺽 삼킨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회의실 문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회의시작을 기다렸다.     


청구 관련 심리자료는 회의 며칠 전 위원들에게 전달되어 회의 시 새삼스레 다시 읽을 필요는 없고,

훑어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나

강하게 주장해야 할 부분,

순서나 흐름이 매끄럽지 않은 그런 부분을 정리해 주며

부과의 부당성에 대해 진술하면 될 것이다.   


‘청심환이라도 먹어둘걸...’   

 

두근거림을 뒤로한 채 눈을 감고 다시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이윽고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청구인 들어오세요.”     



의장의 사회로 회의가 시작된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청구인 000입니다.”     


“국선대리인으로 선임된 술술이 세무사입니다.”

(세무대리인으로 소개하는 것보다는 무료로 봉사하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진정성 있어 보여 국선대리인을 소개단어로 선택함.)     


“청구주장에 대해 의견진술 부탁드립니다.”   

       


가족들과 직원들 앞에서 했던 여러 번의 리허설

     

'말이 너무 빠르다!'

'눈을 굴리지 마라!'

'손은 왜 안절부절못하냐?'


일침을 견뎌가며 습득한     

호소력을 위한 눈빛과 제스처

전달력을 위한 말의 속도와 어조


이 순간만큼은 ‘어퓨굿맨’의 ‘톰크루즈가’ 되어 보이리라.  


            

의견진술 및 위원들과의 문답까지 30분 정도 걸린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청구인과 대리인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동안의 긴장이 한 번에 린 탓일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어르신 고생 많으셨습니다.”     



밖에 나가 인사를 건네며 바라본 청구인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있었다.     

죄인처럼 맞이한 위원회 회의가 무서우셨을까?     



“세무사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결과는 며칠 걸리니 마음 편히 먹고 기다려 보시죠.”     


     




국세심사위원회를 준비하는 내내

내가 최고의 세무사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모자란 부분은 진심으로 채웠다     


심사위원들에게도 나와 할머니의 마음이 닿았기를 바라며

결과는 하늘에 맡길 뿐.







5일이 지나

세무서로부터 우편물이 도착했다.


채택, 불채택 여부 모두 우편으로 통지하기에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

손에 땀을 쥐며 봉투를 뜯어본다. 


결과는?!  

채택은 청구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ㅠㅠ


지성이면 감천이다.


몇 달 같던 10일이었다.


할머니의 호통에 그만두고 싶은 위기의 순간

불복에만 올인하다 보니 다른 일을 맡지 못해 금전적인 손해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면

노력은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라

의미 없는 패배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일이 끝나고 나서도 답답함이 가시질 않고 마지막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니

안구건조증으로 고생 중인 나의 눈에도 눈물이 살짝 맺힐 만큼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할머니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세요



기뻐하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전화번호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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