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날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방 중앙까지 들어온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마저도 고요한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 작은 오두막을 감싸고 있다.
잠을 충분히 자고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을 때의 상쾌한 기분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리즈는 그렇게 아침에 눈을 떴다.
며칠 동안 고통과 씨름을 하며 밤새 잠을 못 잔 탓인지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있다.
눈은 푹 꺼져 보였고 얼굴 피부도 생기를 잃은 듯 칙칙해 보인다.
아마도 약이 독하기 때문에 다시 활력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되었다. 신경 쓰고 치장해야 하는 이유도 없기에 이 아침을 즐기기로 한다.
분주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리즈는 눈을 비비며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햇살이 눈이 부시다.
천천히 주변을 살핀다.
풀과 꽃들이 싱그럽게 그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아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의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열려있었다.
그 옆에는 라벤더가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장미 나무에는 장미가 수줍게 피어나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자연은 언제나 그들만의 색채를 드러내며 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리즈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몸 구석구석의 감각들을 살핀다.
다리에 힘이 빠져있었지만 걷고 싶었다.
조금 더 싱그러운 냄새를 맡으며 깊은 호흡을 하고 싶다.
오두막의 뒤편에는 레몬머틀이라는 나무가 있다.
그 나뭇잎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보면 무척 향기롭다.
상큼하고 깨끗한 향이 손바닥에 가득 찼다.
'레몬머틀 향이 가득한 욕조에서 목욕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리즈는 생각하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정원의 한 구석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온다.
그곳에서는 트리시가 무언가를 기계 안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엇인지 궁금하여 리즈는 그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트리시는 삐쭉삐쭉하게 삐져나와 있는 나뭇가지들을 잘라서 한쪽에 쌓아놓고는 그것들을 분쇄기에 집어넣는 중이었다.
모자를 쓰고 두꺼운 장갑을 끼고는 무더운 날에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서 트리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트리시, 좋은 아침이에요"
트리시는 리즈를 바라보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을 손등으로 닦으며 말한다
"응 안녕 리즈, 몸은 좀 어떠니? 얼굴이 많이 핼쑥해 보이는구나. 통증은 가라앉았니?"
리즈는 얼굴을 만지며 답한다
"몸은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아직 입맛은 없어서 조금씩만 먹는 중이에요 그리고 통증은 낮동안은 괜찮은 거 같은데 밤에는 아직도 많이 느껴지는 중이에요 그런데 뭐 하시는 거예요?"
트리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리즈를 바라보며 말한다
"난 이 나뭇가지들을 처리하고 있어. 이 기계에 넣으면 잘게 부순 나무조각들로 만들어 주거든. 이걸 가지고 집 앞의 장미 화단 밑동을 다 덮어주려고 해"
리즈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묻는다
"제가 도울일이 있을까요?"
트리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고마워 리즈 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너는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 해"
리즈는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알겠어요 트리시. 하지만 지금은 햇볕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조금 더 산책을 하고 들어가서 쉬도록 할게요"
리즈는 트리시에게 인사를 하고 그녀가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두었다.
이 집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고 조화롭게 보였던 것은 트리시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토록 열심히 일을 하니 가능한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트리시의 모습은 건강해 보이고 매우 생기가 넘쳐 보였다.
일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정원이나 산책하는 하루하루가 계속될수록 리즈는 마음속의 무겁고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구도 사라졌고,
돈을 많이 버는 것에도 욕심이 없어졌다.
마음에 막혀있었던 욕심들을 다 비우고 나니까
건강하고 싶어졌다
튼튼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하고 싶어졌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생기가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프지만 않고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힘들고 무거운 마음들을 모두 비우고 가볍고 깨끗한 것들로 채워나가는 여정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지금의 리즈의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
행복하지 않은 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일터
매사에 칼날이 서있듯이 날카로운 동료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일은 트리시와 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해 보리라 마음먹는다.
트리시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리즈는 마음으로 트리시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토록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이다
리즈와 트리시는 어떤 운명이 있기에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
리즈는 창밖으로 트리시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감을 느낀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힘이 되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
이 오두막에서 오랜 시간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리즈는 잠시 눈을 붙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