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날들
푸르른 초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매미들의 합창 소리가 낮동안 계속되었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너무 커 때로는 아침잠을 방해하기도 했다. 리즈는 일터에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들이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페이스트리 셰프로 일하는 리즈는 아침부터 아주 분주하다.
아침에 눈을 떠 아침밥을 챙겨 먹고 일터로 향한다. 30분 정도 운전을 하고 가면 아름다운 일터인 프랑스 레스토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운전을 하며 생각한다
'오늘도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곳은 정적이 감도는 아주 조용한 주방이었지만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빠른 시간에 해내야 하는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이다. 손님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작은 불평의 소리라도 들려오면 난리가 나는 곳이었다.
항상 예약을 한 손님들로 꽉 차있었고 너무나 유명해서 유명인사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손님상은 12가지 코스 요리로 구성되어 있다.
리즈는 페이스츄리에서 일을 했지만 준비해야 하는 코스가 6가지 정도 되어서 해야 할 일들이 매일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우선 출근하자마자 다른 셰프가 아침을 준비하던 어지러운 주방을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배달이 되어온 온갖 식재료들을 알맞게 냉장창고에 정리해 놓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빵을 굽기 위해 어젯밤에 반죽해 놓은 빵 반죽을 꺼내어 적당히 부풀 때까지 기다려준다.
서비스 시작하기 45분 전쯤에 빵 반죽들을 오븐에 집어넣고는 35분 정도 기다리면 맛있는 사워도우가 완성되어서 나온다.
이 빵이 나오는 순간은 언제나 긴장되고 뿌듯한 순간이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면서 모든 사람을 허기지게 만든다.
겉은 아주 바삭하고 속은 따끈따끈한 빵에 고소한 버터를 발라 먹으면 정말 너무 맛있다.
때로는 배가 고픈 셰프들이 와서는 손님에게 줄 수 없는 빵의 끝부분을 잘라먹기도 한다.
연신 감탄하면서 말이다.
운이 좋게도 한 번도 빵을 굽는 것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만약 실패했더라면 그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헤드셰프에게 진탕 깨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손님들의 분노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리즈는 서비스 시작 전에 항상 레스토랑에 달려있는 정원으로 나간다.
주방에 있으면 그곳에 감도는 긴장감 때문에 숨이 막히기도 했고 장식으로 쓸 여러 가지 꽃잎과 허브들을 손님상에 내기 직전에 따야 했다.
항상 정원에 나가며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야외 테이블에서 여유로이 차를 마시거나 스콘이나 치즈를 먹는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인생을 즐기고 있건만 리즈는 주방에서 숨이 막히게 일을 하며 온몸에 진땀을 빼고 있으니 어쩐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리즈는 햇볕에 반짝이는 장미 꽃잎을 한 장 한 장 통에 담으며 심호흡을 한다.
'잘될 거야 괜찮아'
이사를 간 오두막집은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으니 집에 가면 씻고 쑤시는 온몸 구석구석을 주무르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피로는 더해져만 갔다.
레스토랑에서는 일을 마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밤 11시 정도에 끝나고 집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일은 손에 익어서 척척 해나갔지만, 요구사항이 점차 많아져서 모든 식재료를 주문을 마치고 다음날에 지장이 없도록 음식준비를 해야만 집에 갈 수가 있었다.
리즈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이윽고 새벽 한 시가 넘어야 일이 끝나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리즈는 점차 야위어 갔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져서 어느 날 아침에 거울을 보는데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옆의 목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히는 것을 보았다.
'이젠 목까지 살이 빠지는구나 이런 젠장!'
언제난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리즈이지만 이번에는 도전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웃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만 했다.
레스토랑은 더욱 바빠져서 온갖 이벤트를 해내야 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날이 리즈에게 닥쳤다.
디저트만 다섯 가지 코스로 구성된 정찬 코스를 제공하는 행사가 예정되었다.
그 모든 것은 리즈의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고 그 메뉴들을 헤드 셰프에게 허락을 받고 그것들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손님들이 비싼 돈을 주고 맛보러 오는 정찬 코스여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접시에 놓을지, 장식은 무엇을 사용하고, 어떤 그릇과 잘 어울릴지, 몇 개를 준비해야 할지 또 혹시 모를 여러 가지 음식 알레르기 등을 고려해서 다른 대안도 만들어 놓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숨가프게 흘러갔다.
온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손님들 음식을 준비하면서 짬짬이 이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일을 했고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하루 종일 쫄쫄 굶으면서 리즈는 계획했던 준비들을 차근차근해 나아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한다
평소와 다름없는 짧지만 평화로운 밤 시간이었다.
새벽에 잠에서 깬 리즈는 침대가 온몸에서 나온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너무 추워서 옷을 재빠르게 갈아입고는 침대 시트를 마른 것으로 교체하였다.
다시 잠을 청해 곧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아침이 되어 깨어난 리즈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과 오한으로 온몽이 떨려오고 있었다.
열도 나는 것 같고 등 쪽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어딘가 잘못되었다'
뻐근한 쪽을 손으로 만져보니 뭔가 물집 같은 것이 잡혀있었다.
'이건 뭐지?'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혹시 머릿속에 생각나는 그 병이 맞을지도 모른다
너무너무 아프다는 [대상포진] 말이다.
우선 일을 쉴 수는 없었기에 차를 끌고 일터로 향한다.
식은땀은 멈추질 않고 온몸에서 흐르고 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리즈는 헤드셰프에게 다가가 몸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대상포진 일 것 같다고 말이다.
그는 반색을 하며 "그거 옮는 거 아니니?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
잘 모르겠다 옮는 병인지 아닌지는
리즈는 너무 마음이 상했다 그가 손님에게 옮길 수도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인사를 마치고 차를 운전해 가까운 병원으로 향한다.
근처 마을의 모든 병원에서는 예약하면 2주 정도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리즈에게는 당장 의사가 필요한데 이를 어쩌나
리즈는 당장 큰 도시의 병원에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중에 하나의 병원에서 오후에 의사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대답을 듣고는 그곳을 향해 두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도시라 그런지 차도 많이 밀리고 예약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무사히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리즈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사를 마주하였다.
그는 리즈에서 증상에 대해 묻고는 물집이 잡힌 곳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등을 보여주자마자 그가 말했다
"대상포진입니다. 수포가 잡힌 지 얼마나 되었죠?"
리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늘 아침에요"
빨리 대상포진 약을 먹어야 한다고 의사가 말하고는 진단서를 써준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일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일주일 동안 쉰다고?' 리즈는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었다
'딱 일주일만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며 혼자 중얼거리 곤 했다
아프지만 이젠 마음 놓고 쉴 수 있으니 모든 게 다 괜찮았다.
의사도 빨리 병원에 온 것을 너무 잘했다며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영양섭취에 신경을 쓰라고 하였다.
다시 두 시간을 운전하여 집에 도착한 리즈는 곧장 트리시에게 달려갔다.
그녀에게 말한다
"트리시 오늘 너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 그런데 의사는 나에게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약 먹고 쉬라고 했어"
그녀는 몹시 놀라며 " 대상 포진에 걸렸다고?"
"리즈 너 얼마나 무리를 한 거니?"라고 말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트리시는 은퇴한 간호사이다. 그녀는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병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병에 관련해서 아는 것이 많은 분이다.
"우선 잘 먹고 잘 자야 해. 잠을 푹 자고 물을 많이 마셔 알겠지?"
리즈는 솔직히 너무 아파서 먹는 것보다 잠이 더 필요했다.
잠 한번 실컷 자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곤이 가득한 리즈의 얼굴을 바라보던 트리시는 "어서 가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겠어 리즈"
라고 말하고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말하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온 리즈는 온몸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여기저기가 고통스럽게 아프기 시작했다.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약을 먹었다.
그래도 아팠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이 오는 게 아니라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시작되어서 자다가 깼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더니 사실이었다.
상태가 언제 나아지려는지 모르겠다.
통증이 반복되는 그 사이 리즈는 생각한다
'아프니까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
'맛있는 것도 맛을 모르고 잠도 잘 못 자고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야'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자이언티의 노래가사처럼 그렇게 되어야겠다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 발짝 떨어져서 다시 살펴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고통이 시작되면 그 사이에 숨 쉴만한 여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 여유동안 밥도 먹고 일상생활을 할 수가 있다.
다시 고통이 시작되지만 먹은 밥심으로 버틸 수가 있다.
리즈는 지금 아프지만 조금 더 자기 인생에 대해 성숙해지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명성이 자자한 곳에서 일하며 느낀 6개월의 시간을 다시 되짚으며 말이다.
영화 대사에 '뭐시 중헌데?'가 있다.
그야 말고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