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고 싶으면 꿈을 꾸세요.
나는 날마다 꿈을 꾼다. 때로는 주어진 것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자라는 소박한 꿈을, 때로는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한다. 어릴 적 가졌던 어떤 꿈들은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또 어떤 꿈들은 아직 진행 중인 것들도 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내가 꾸었던 꿈 중에 하나를 완성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나는 행복하다. 꿈이 있다고 벌금을 무는 것도 아니고 꿈을 많이 꾼다고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니 마음껏 꿈을 꾼다. 나에겐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낫다.
'꿈'하면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위해 비행기를 탔던 25년 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캐나다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며 시작한다는 설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떠올리기도 한 듯하고 그래서 약간 들뜨기도 했던 듯하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었는데 비행기가 이룩한 후 제공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왼쪽에 있는 남편 쪽만 계속 보고 말을 하던 차라 내 오른쪽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옆자리에 있는 백인 남자는 컴퓨터를 열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옆 사람을 훔쳐보려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행기 일반석에서는 옆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눈동자만 조금 옆으로 돌려도 다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남자는 빠르게 타이핑을 하다가 잠시 고민하고 다시 무언가를 타이핑하였다. 나는 '기회를 봐서 영어로 대화를 해봐야지' 맘먹고 질문할 내용들을 하나씩 속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밴쿠버에 사느냐? 한국에는 왜 갔느냐? 하는 일이 뭐냐? 나는 오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가는 거다' 등등 혼자 속으로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말할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대화해 보려고… 문장을 소리 내서 연습해보고 싶어서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한 번 더 연습하려고 화장실을 한 번 더 갔다 왔다. 남편은 갑자기 왜 화장실을 그리 자주가냐고 속이 안 좋냐고 묻더라. 두 번은 영어 문장을 소리 내서 연습해 보고 싶어서 갔는데 세 번째는 진짜 화장실 갈 일이 생겨서 화장실을 또 갔다 (ㅎㅎㅎ).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어린애 같고 어찌 보면 유치하고 어찌 보면 작은 거 하나라도 잘해보려는 의욕과 욕심이 있었던 그때가 젊음이었나 싶다. 옆에 앉은 서양인과 영어로 대화 한 번 하겠다고 혼자서 이런저런 머리를 굴리고 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서양인 남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단지 내 영어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민 신청을 해놓고도 답사를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서 캐나다 밴쿠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림이나 비디오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멋지고 예쁜 곳인지.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지. 그 백인 남성은 밴쿠버에 사는지 등등…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아 나는 말을 시켰다. 그 백인 남자는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밴쿠버에 사는데 밴쿠버는 사계절이 있으나 크게 우기와 건기로 나뉜단다. 여름에는 지상의 천국이고 겨울에는 비가 하염없이 온단다. 전체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고 우리 가족이 밴쿠버로 이민 오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까지도 말해주었다. 한국은 업무상 다녀오는 비즈니스 트립(Business Trip)이란다. 다니는 회사 이름이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업무상 다니는 여행 경비, 호텔, 항공료 등은 회사에서 다 지급해준단다. 그 백인 남자는 대화 끝부분에 내게 어디서 영어를 배웠길래 영어를 그리 잘하냐는 인사성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 영어실력이면 캐나다에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겠다고 칭찬까지 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업(up) 되어 갑자기 이민을 가게 된 것이 내가 정말 원해서 가게 된 최선의 선택이 된 듯했다. 지금까지 내 안에 있었던 두려움과 걱정거리가 눈 녹듯 사라지고 희망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나는 회사 경비로 비즈니스 트립을 하는 그 서양 남자가 너무 부럽고 나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비즈니스 트립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겼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멋진 폼으로 영어를 쫘악 써 내려가는 내 모습을 꿈꿔보았다. 그런 날이 내게도 올런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밴쿠버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 뱃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늘 녀석이 본인의 존재를 알리느라 빵빵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볼록한 내 배를 보고 갑자기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뭘 하고 싶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닌 그저 막연하게 그 백인 남성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 출장을 하는 그 모습 자체를 막연히 동경한 듯하다. 그때 난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저런 멋진 모습의 비즈니스 트립을 하고야 말겠다’라는. 나는 막연하지만 나 자신에게 무척 희망적인 꿈을 가졌다.
그렇게 이민 10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비행기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영어로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내가 이민을 가던 첫 비행기 안에서 꿈꿔왔던 그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경비로 콘퍼런스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둘 키우랴 공부하랴 늘 바빴던 나는 내가 10년 전에 보았던 그 백인 남성의 여유롭고 멋진 모습이기보다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발표자료를 준비하느라 복잡하고 분주하기만 했다. 어미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떠나는 출장길이 그다지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걱정 근심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이민을 가던 10년 전 나의 모습이 문득 겹쳐졌다. 그리고는 그동안 수많은 꿈을 꾸며 분주하게 살아왔던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영어 몇 마디를 해보고자 화장실을 두서너 번이나 갔다 왔던 그 기억들이 싱거운 웃음을 만들어 냈다. ‘후훗…’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보다 더 부지런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한다. 이젠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두 아이들에게 나는 지금도 내 꿈을 말한다. 옛날부터 이루어 가고 있는 꿈, 최근에 새로 생긴 꿈, 이룰 수는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꿈을. 키가 나보다 더 큰 내 딸아이는 나를 보고 꿈꾸는 소녀 'a dreaming girl'라고 하면서 내 머리를 어린아이 다루듯 쓰다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