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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Nov 24. 2021

아직도 꿈을 꾸는 소녀를 꿈꾼다!

꿈을 이루고 싶으면 꿈을 꾸세요.

나는 날마다 꿈을 꾼다. 때로는 주어진 것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자라는 소박한 꿈을, 때로는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한다. 어릴 적 가졌던 어떤 꿈들은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또 어떤 꿈들은 아직 진행 중인 것들도 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내가 꾸었던 꿈 중에 하나를 완성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나는 행복하다. 꿈이 있다고 벌금을 무는 것도 아니고 꿈을 많이 꾼다고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니 마음껏 꿈을 꾼다. 나에겐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낫다.


''하면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위해 비행기를 탔던 25년 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캐나다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며 시작한다는 설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떠올리기도 한 듯하고 그래서 약간 들뜨기도 했던 듯하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었는데 비행기가 이룩한 후 제공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왼쪽에 있는 남편 쪽만 계속 보고 말을 하던 차라 내 오른쪽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옆자리에 있는 백인 남자는 컴퓨터를 열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옆 사람을 훔쳐보려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행기 일반석에서는 옆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눈동자만 조금 옆으로 돌려도 다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남자는 빠르게 타이핑을 하다가 잠시 고민하고 다시 무언가를 타이핑하였다. 나는 '기회를 봐서 영어로 대화를 해봐야지' 맘먹고 질문할 내용들을 하나씩 속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밴쿠버에 사느냐? 한국에는 왜 갔느냐? 하는 일이 뭐냐? 나는 오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가는 거다' 등등 혼자 속으로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말할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대화해 보려고… 문장을 소리 내서 연습해보고 싶어서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한 번 더 연습하려고 화장실을 한 번 더 갔다 왔다.  남편은 갑자기 왜 화장실을 그리 자주가냐고 속이 안 좋냐고 묻더라. 두 번은 영어 문장을 소리 내서 연습해 보고 싶어서 갔는데 세 번째는 진짜 화장실 갈 일이 생겨서 화장실을 또 갔다 (ㅎㅎㅎ).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어린애 같고 어찌 보면 유치하고 어찌 보면 작은 거 하나라도 잘해보려는 의욕과 욕심이 있었던 그때가 젊음이었나 싶다. 옆에 앉은 서양인과 영어로 대화 한 번 하겠다고 혼자서 이런저런 머리를 굴리고 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서양인 남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단지 내 영어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민 신청을 해놓고도 답사를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서 캐나다 밴쿠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림이나 비디오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멋지고 예쁜 곳인지.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지. 그 백인 남성은 밴쿠버에 사는지 등등…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아 나는 말을 시켰다. 그 백인 남자는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밴쿠버에 사는데 밴쿠버는 사계절이 있으나 크게 우기와 건기로 나뉜단다. 여름에는 지상의 천국이고 겨울에는 비가 하염없이 온단다. 전체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고 우리 가족이 밴쿠버로 이민 오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까지도 말해주었다. 한국은 업무상 다녀오는 비즈니스 트립(Business Trip)이란다. 다니는 회사 이름이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업무상 다니는 여행 경비, 호텔, 항공료 등은 회사에서 다 지급해준단다. 그 백인 남자는 대화 끝부분에 내게 어디서 영어를 배웠길래 영어를 그리 잘하냐는 인사성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 영어실력이면 캐나다에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겠다고 칭찬까지 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업(up) 되어 갑자기 이민을 가게 된 것이 내가 정말 원해서 가게 된 최선의 선택이 된 듯했다.  지금까지 내 안에 있었던 두려움과 걱정거리가 눈 녹듯 사라지고 희망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나는 회사 경비로 비즈니스 트립을 하는 그 서양 남자가 너무 부럽고 나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비즈니스 트립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겼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멋진 폼으로 영어를 쫘악 써 내려가는 내 모습을 꿈꿔보았다. 그런 날이 내게도 올런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밴쿠버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 뱃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늘 녀석이 본인의 존재를 알리느라 빵빵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볼록한 내 배를 보고 갑자기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뭘 하고 싶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닌 그저 막연하게 그 백인 남성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 출장을 하는 그 모습 자체를 막연히 동경한 듯하다. 그때 난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저런 멋진 모습의 비즈니스 트립을 하고야 말겠다’라는. 나는 막연하지만 나 자신에게 무척 희망적인 꿈을 가졌다.


그렇게 이민 10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비행기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영어로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내가 이민을 가던 첫 비행기 안에서 꿈꿔왔던 그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경비로 콘퍼런스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둘 키우랴 공부하랴 늘 바빴던 나는 내가 10년 전에 보았던 그 백인 남성의 여유롭고 멋진 모습이기보다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발표자료를 준비하느라 복잡하고 분주하기만 했다. 어미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떠나는 출장길이 그다지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걱정 근심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이민을 가던 10년 전 나의 모습이 문득 겹쳐졌다. 그리고는 그동안 수많은 꿈을 꾸며 분주하게 살아왔던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영어 몇 마디를 해보고자 화장실을 두서너 번이나 갔다 왔던 그 기억들이 싱거운 웃음을 만들어 냈다. ‘후훗…’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보다  부지런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젠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두 아이들에게 나는 지금도 내 꿈을 말한다. 옛날부터 이루어 가고 있는 꿈, 최근에 새로 생긴 꿈, 이룰 수는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꿈을. 키가 나보다 더 큰 내 딸아이는 나를 보고 꿈꾸는 소녀 'a dreaming girl'라고 하면서 내 머리를 어린아이 다루듯 쓰다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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