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패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쉽게 포기하기는 싫지만 견뎌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낄 때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얻는 일이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이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토로할 때 무조건 '참고 견뎌라', '이겨내라'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참고 견디는 인내나 용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었으면 내 아이들은 이미 힘들다는 말을 내게 하지 않았을 것이란 걸 알기에.
살다 보니 성장에는 반드시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려움을 앞에 두고 포기하느냐 견뎌내서 더 성장하느냐는 본인의 기질, 자존감, 자신감 등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부모 된 마음으로 내 아이들이 일생을 편히 살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내 아이들이 고민 하나 없는 그저 꽃길만 걷기를 원치는 않는다. 어려움을 전혀 겪어보지 않고 온상에서 곱게 자란들 어려운 남을 어떻게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겠나 싶어서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견뎌라' '이겨내라'라는 말 대신 '해봐라' 그리고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견뎌내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해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듣기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 말이 그 말일 수도 있겠으나 난 아이들에게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포기가 반드시 인생 전체의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부족함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고 그 도전에 필요한 용기를 가질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두려움이 없으면 사람이 무모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해오던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같은 문제를 오랫동안 안고 살며 결국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래 한 번 해볼걸..."이라며 본인이 부딪쳐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한다.
나는 운이 좋게 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의 응원과 도움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월하게 마쳤다. 석사 과정을 거쳐가면서 큰 어려움이 없이 좋은 학점을 받아가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경험도 쌓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사 첫 학기에 시작한 문화기술적 연구방법론 첫 수업은 내게 좌절감을 주었다. 그 과목 교수님은 목소리가 작은 편이었으나 말의 속도는 상당히 빨라서 좀처럼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강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받아 적기도 힘들었다. 더군다나 내게는 생소한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멍하게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과목을 포기해야 하나?' 혼자 궁시렁거리며 강의실을 나왔다.
두 번째 수업은 내게 더 절망적이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저마다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질문과 그 교수님의 설명들이 내게는 라디오 채널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을 때 나는 잡음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 대학원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이미 2년을 공부한 후인데 무슨 일인지 나만 외딴섬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20여 명이 되는 학생들 중에서 동양인 얼굴을 가진 사람은 딱 나 하나였다. 기분이 묘했다. 캐나다에서 살다 보면 다양한 인종들이 있는데 배경이 어떻든 간에 같은 피부색을 가졌다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수업에서는 그런 위안조차도 가질 수 없었다. 교수님은 그룹 토론을 하라고 하셨다. 학생들은 이리저리로 움직이며 그룹들을 만들어 갔다. 내가 어정쩡하게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팀들이 만들어지고 서로 대화가 오고 가고들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내 앞에 있는 그룹에 슬그머니 참여하였다. 말 한마디 하려고 하면 벌써 딴 얘기로 넘어가고 나는 입을 몇 번이고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그룹 토론 내내 단 한 마디도 못하고 의도하지 않은 경청(?)만하다 수업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버스 정거장마다 손님들이 내리고 탈 때면 내가 탄 버스 전체가 환해졌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면 다시 흐린 불빛만 남았다. 그 흐린 불빛 사이로 버스 유리창에 비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을 보았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버스 뒷 좌석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눈물이 주르룩 흘렀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하고 기죽어 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 둘이나 있는 동양인 아줌마가 공부하러 다닌다고 무거운 백팩을 짊어지고 날마다 3시간 가까운 시간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내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차 창 밖 시린 바람이 내 안으로 훅 들어와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초라한 내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고 수업시간 내내 쭈그려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캐나다 대학 학제는 일 년에 3학기가 있는데 9월부터 12월까지 가을학기, 1월부터 4월까지 겨울학기, 그리고 5월부터 8월까지 여름학기로 나뉜다. 한 학기는 보통 13주이고 보통의 대학원 과목당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만약 수강을 취소하려면 2주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 수업 다음 날이 성적표에 수강취소(Withdraw)를 나타내는 'W'가 없이 수강취소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이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할지 아니면 수강취소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밤새 고민했다. 왜냐하면 단 한 과목이라도 내 성적표에 안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은 현실적 욕망과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고 싶지도 않은 알량한 자존심 사이에서 생각보다 깊은 고민을 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작은 일에도 생각 밖으로 큰 고민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고 자못 놀랐다. 결국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한 과목쯤 점수가 안 좋다고 해서 내 인생이 폭망이야 하겠냐'하고 수업을 계속 듣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일주일에 많은 시간을 그 과목 수업 준비를 위해서 할애했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그 수업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직 내 연구 방법론을 정하지도 않았으니 그 수업을 듣기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기본적인 지식이 많이 딸렸던 것이었다.
나는 교수님이 추천하신 참고 논문과 서적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차근차근 읽어갔다. 그러다 보니 그 교수님의 빠른 말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질문도 했다. 그때 내 질문을 들으신 교수님께서는 "네가 많은 논문을 읽었구나!"라고 시작하며 대답을 하셨다. 그 수업을 마치고 나는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초등학교 학생처럼 흥분되어 있었다. 7권의 책이 들어있는 내 백팩이 그날은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그렇게 13번의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과제물을 제출한 후 나는 처음으로 내 학점을 날마다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좋은 점수를 받게 되자 그 교수님을 찾아갔다.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는 내게 그 교수님께서는 13주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그리고 대견(proud)하다고 하셨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많은 공부를 했던 과목이 바로 이 과목인 듯싶다.
나는 이때 얻은 작은 승리를 통해서 지금까지 어려운 일을 마주하게 되면 '이 또한 다 지나 가리라'라는 수동적인 입장보다는 '그래 해보는 거다' '두려워 말자'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
누구든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하더라도 패배를 통해서 배우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는 태도나 노력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실패를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적극적인 태도나 노력이 없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모함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승리들이 쌓여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내공은 작은 실패를 경험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이나 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그 선택이 포기이든 견뎌냄이든 이미 작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겪는 마지막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성장해가고 있으니 힘들고 아픈 것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힘들 이유도 아플 이유도 없다. 우선 해봐라. 그리고 정 힘들면 포기를 선택해도 된다. 포기를 해야 하면 과감하게 포기해라. 그리고 방향을 바꾸면 된다. 아무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실패를 통해서는 많이 배울 것이고 성공을 통해서는 조금 배울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의 소책자에서 읽은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실패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므로 우리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Failure is just a way for our lives to show us we're movig in the wrong direction, that we should try something different)."
뉴욕 자이언트 팀에서 맹활약하였던 유명 투수 중에 한 명이었던 크리스티 메튜슨(Christy Mathewson) 은 "승리를 통해서는 조금 배우지만 패배를 통해서는 모든 것을 배운다(You can learn a little from victory, you will learn everything from defeat)"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