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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Dec 31. 2021

좋은 친구

좋은 친구를 갖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가 되세요.

그 나물에 그 밥!


어려서부터 나의 어머니께서는 금묵자흑 (近墨者黑)과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사자성어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속담을 인용하시며 친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나쁜 친구 옆에 있으면 나도 나쁜 버릇을 닮는다고 항상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라고 하셨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 좋은 친구와 어울리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어머니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 친구의 중요성을 반복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쓰셨던 속담에 가까운 영어 표현 (예를 들어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어울린다)을 빌려서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모든 자녀가 그 부모에게는 다 소중한 아들, 딸일 텐데 어떤 친구는 좋은 친구이고 어떤 친구는 나쁜 친구라는 딱지를 붙여서 가려서 사귀라고 해야 하나 좀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친구의 역할이 전부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미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캐나다 교육제도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PAC (학부모 자문 위원회 Parent Advisory Council)에 자문위원으로 참여를 했다. 그때 여러 해를 함께 학부모 자문 위원회에 관여했던 가까운 네 명의 엄마들이 있었다. 회장이었던 엄마는 치과 의사였고, 다른 엄마는 변호사였으며, 또 다른 엄마는 중학교 교사였고, 마지막으로 건축사였던 엄마가 있었다.


그 네 사람 중에서 미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온 건축사였던 백인 엄마는 유난히 나에게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에게 친절했다. 그녀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나의 딸보다 한 살 위었고 둘째 아들은 내 아들과 같은 반이었다. 미국 죤스 홉킨스 대학(The 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받은 그녀의 남편은 우리 동네에 있는 SFU(Simon Fraser University 사이먼 프레이져 대학)라는 대학 교수였고 그녀는 건축사이면서 지역 사회 축구팀 코치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열리면 내 딸아이를 추천하기도 해 내 딸아이가 방학 때이면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을 갖기도 했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내가 혹시라도 놓치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알려주는 일도 많았다. 가끔씩 보게 되는 그녀의 남편도 내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자가 되길 바란다며 격려해 주곤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둘째 아들과 내 아들이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로 여러 해를 함께 보냈다.


그녀의 가정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림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진 집이었으며 그녀는 자녀들을 대할 때 늘 부드럽고 배려 깊고 상냥했다. 또르르 굴러가는 그녀의 영어 발음은 듣기에 좋았고 짧지만 컬이 진 그녀의 금발 머리는 세련되고 예뻤다.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담고 있는 그녀는 참 우아하다고도 생각했다. 이민 온 지 십 년 안팎에 있고 내가 아직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우리 집안에 비하면 그녀의 가정은 완벽해 보였다. 나는 나를 친구라 불러주는 그녀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엄마들은 달마다 있는 학부모 모임이라든지 아이들을 픽업할 때라든지 서로 오명가명 하며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면서부터 이 다섯 엄마들의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다. 모두가 직업이 있고 바쁜 사람들이라서 따로 만나 교감을 나누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나와 그 건축사 엄마와는 여전히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이 엄마에게서 뜻밖의 이메일이 왔다. 슬픔이 많이 묻어 나는 이메일이었다. 그 이메일 내용은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것이다. 집을 나간 뒤 친구와 살고 있는데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단다. 아들 친구가 차를 고치는 일을 하는데 거기서 일을 같이 하고 먹고 지낸단다. 그런데 그 아들 친구도 자퇴를 했단다. 내가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에 집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냐 했더니 없었단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들이 어떤 친구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집을 나가고 결국 학교도 그만두고 한동안 연락 두절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연락은 하고 지낸다는 얘기를 했다. 두 부부가 둘째 아들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남편이 암과 싸워야 했다.


그 친구와 나는 만나기로 했다. 커피숍에서 몇 년 만에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난 그녀의 맘고생이 얼마나 심한지 한눈에 알아볼  있을 만큼 그녀는 지쳐 보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 친구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지난 1-2년 동안 본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는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가정이었는데, 그렇게 밝고 다정다감했던 그녀가 우는 모습에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내 맘도 많이 아팠다.


나는 그녀의 가정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다. 나도 그녀처럼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녀가 아파하니 나도 많이 아팠다. 그 뒤로도 우리는 가끔 만났다. 내가 그녀를 따뜻하게 위로하기에는 내 영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완성되지 않은 나의 이민 초기 시절 나와 내 아이들에게 베푼 그녀의 친절함과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오다가다 들렀다며 갑자기 과일 바구니를 던져주고 오면 그녀는 사양하기보다는 고맙다고 내 호의를 적절하게 받아주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다행히 그녀의 남편은 치료가 잘 되어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첫째 아들은 엘른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 (SpaceX)에 취직이 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했던가. 살다 보면 행복하다고 자만할 일도 아니고 또 불행하다고 포기할 것도 아닌가 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知天命)의 나이가 되고도 난 아직도 좋은 친구, 나쁜 친구를 구분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나는 지금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이런저런 이유로 구분하고 나누고 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여러 책자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도움이 된다 안된다 등의 많은 정보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복잡하다. 내게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으란 법이 없고 또 남에게 좋은 평을 받는 사람도 나와는 좋은 인연이 아닌 경우도 많다. 경계해야 할 사람의 특징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내 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남 앞에서 나를 미화하기에 바쁘기도 하며, 잘 나가는 친구가 나를 친구로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만 그 친구가 절친이라고 우기고 다닐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 나쁜 친구를 구분하기 전에 먼저 본인 스스로가 좋은 친구가 되라고 말한다. 친구 앞에서 칭찬하며 친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친구가 되라고 한다. 

외롭고 힘들 때 곁을 지켜주는 친구

나누고 베푸는 것에 너무 인색하지 않은 친구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되 아무리 가까워도 무례하지 않은 친구 

친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작은 것이라도 도움이 되는 친구

이런 친구가 한 사람만 있어도 좋겠고 나를 그런 친구라 말해주는 친구가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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