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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05. 2022

사춘기

사춘기를 겪어봐야 성장한다니까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는 그 시기와 정도에 있어서 개인차가 있으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한 번쯤은 겪는다.  그 반응도 다양하나 대체적으로 혼돈의 시간을 통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시기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아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기라는 한 인격체가 만들어진다. 어찌 보면 사춘기의 혼돈을 혹독하게 겪으면 겪을수록 내가 누구인지를 더 알아가는 기회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춘기를 마냥 불안한 시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사춘기가 짧으면 짧을수록 또 겪는 듯 마는 듯 지나가 주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기는 하다.  


내 딸아이는 딱히 친한 친구가 없이 주로 책을 가까이하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딸아이에게 친한 친구가 생기기를 바랐다. 시간이 가고 딸아이에게도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아이와 많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멋을 잔뜩 부리는 친구들 영향인지 딸아이는 이런저런 옷을 사달라고 하기도 하고 화장품을 사서 얼굴 다듬는 일에도 공을 들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하는 말에 반발도 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고분고분하던 그림 같은 딸아이가 화를 내고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 학부모회에 참여하여 직책을 맡기도 하고 학교 일에 참여해 왔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의 교육에 간접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으로 참여하고 캐나다의 교육 제도를 배워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학부모회의 중 교감선생님이 이런 말을 전하셨다. 그날 여학생 몇몇이 재미로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다 본인에게 딱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학부모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 놀랍다는 표정, 아이들이 뭐 그럴 수도 있다는 표정 등 다양했다. 나는 나도 학창 시절에 참 짓궂었지만 여학생들이 뭐 그런 장난을 치나 하는 생각을 하다 말았다.


그 다음날 아침 딸아이가 학교를 가기 전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흠. 화장실 사건의 주인공이 우리 딸이었구먼...' 내가 알고 있는 딸아이와 이 사건은 도무지 연결이 되질 않았다.


 딸아이는 어느 때부턴가 자신에게 붙여진 일종의 모범생, 너드(nerd) 이미지를 버리고 싶었단다. 그래서 자기와 많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또 그 아이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 때론 그 아이들이 시키는 일들을 했단다. 남자화장실을 들어간 것도 아이들이 재미로 시켰단다. 그런데 때마침 그때 교감선생님께서 그 화장실에 계셨던 것이다.


엄마는 학교 발전 위원회 위원장이고  딸아이는 그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였는데 그 교감 선생님은 어떻게 조치를 내리신 걸까? 교감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본인의 행동을 되짚어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와 나는 동네를 함께 걸으며 친구의 중요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나마 깊이 있게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내 얘기를 안 들으려 하더니 그날은 자못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런 친구는 만나면 도움이 된다 안 된다 등 내 어머니에게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얘기들을 나도 똑같이 딸아이에게 반복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춘기가 왔음을 알리던 딸아이는 그 이후로도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진화해 갔다. 어느 순간 자기 방에 노크 없이 함부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민감해했고, 내가 내 맘대로 딸아이 방을 정리해두면 화를 냈다.


한 번은 딸아이 책상 위에 있는 노트를 무심코 열어보다 깜짝 놀랐다. 가출을 위해서 필요한 항목 들을 정리해 둔 내용이었다.  무려 세 장에 걸쳐서 여러 품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인형들부터,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베개, 지진에 대비한 비상식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체크포인트도 만들어 놓고 표시를 해둔 것을 보니 벌써 몇 가지 짐은 싸놓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헉'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너무도 꼼꼼하게 촘촘히 리스트를 작성해 놓은 것을 보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정리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나갈 그 대망의 가출 날짜는 언제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런 친구를 만나라 마라 간섭하는 엄마가 얼마가 답답했을까…  


딸아이와 대화를 하긴 해야겠는데 좀처럼 분위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단 둘이 있는 기회를 틈타 나는 슬그머니 나의 중학교 때 시절을 들먹였다. 그리고 '한 때 집을 나갈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닌 고백을 하였다. 그런데 "복잡한 것이 너무 많아서 나는 결국 포기했다"라고 했다. 딸아이는 내가 자신의 노트를 봤는지 못 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묘한 표정으로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That's exactly what I experienced!" 자기도 똑같은 경험을 했단다. 자기에게 소중한 것들을 두고 집을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가지고 나가자니 최소한 트럭 한 대는 필요하고 그래서 집 나가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단다.


나는 이때다 하고 "그래? 너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구나! 너도 포기했구나!"라고 했더니


딸아이 왈 "포기한 게 아니고 더 준비가 될 때까지 잠시 연기"를 했다고 했다.


'아이쿠... 아직 끝난 얘기가 아니네...'


어쨌든 딸아이의 가출은 대학 공부를 위해서 집을 정당하게 떠나는 그때까지 다행히 잠정 보류되었었다. 그리고 정작 정당한 가출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오래된 인형들,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베개 등등을 남겨두고 아주 단출하게 짐을 챙겨서 떠났다. "다시 돌아올 거니까"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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