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사람이다.
딸아이가 Grade 11 (한국으로 하면 고2) 여름방학에 캐나다 쉐드벨리(Shad Valley)라는 여름 캠프를 한 달간 참여하게 되었다. 캐나다 쉐드벨리라는 프로그램은 캐나다에 있는 10개 대학이 참여하고 캐나다 전역에서 매년 총 500명 정도 고1-3 학생들이 뽑혀 각 대학에 50명씩 보내진다. 동부에 있는 아이들은 서부 대학으로 가게 되고 서부에 있는 학생들은 동부로 가게 된다. 정해진 대학에서 그 대학 교수들의 과학, 수학 그리고 비즈니스 관계되는 과목 강의를 듣고 그룹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마친 학생들이 입학할 경우 특별한 장학금 혜택도 주어진다. 들어가기 어려운 프로그램인데 딸아이는 소정의 장학금도 받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캐나다 온타리오주 썬더베이(Thunder Bay)에 있는 레이크헤드(Lakehead) 대학교로 떠났다. 처음에 딸아이가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는 좋은 프로그램이니 부모로서 나 역시도 기뻤다. 그러나 딸아이가 집을 떠난 지 하루 이틀이 지나가면서 이 아이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은 커져만 갔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무엇인가 배우거나 생각이 나면 사방에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곤 했다.
이곳 비씨주에서는 Grade 5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불어 기초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딸아이는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집안으로 들어오는 동선을 따라 모든 물건/사물에 불어 단어들을 쓴 포스트잇을 부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우리 아파트 문, 에레베이터, 아파트 로비의 우체통함과 탁자, 거기에 있는 소파, 주차장 입구, 주차장에 있는 사다리, 자전거 등등... 드디어 아파트 매니저가 찾아왔다. 딸아이의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 떼어내야 할 것 같다고 딸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란다 ㅎㅎㅎ.
딸아이 방의 벽들은 명언 같은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침대에서 누워 위를 쳐다보면 천장에도 문장들이 쓰여 있었다. 고개가 아파서 어떻게 그 문장들을 천장에 썼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딸아이가 그리운 마음에 딸아이 방에 누우니 여기저기 여러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It is not the size of the dog in the fight, it is the size of the fight in the dog.
이 말은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한 말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싸움의 크기가 아니라 싸움을 이기고자 하는 열정, 의욕, 투쟁의 크기라는 말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거나 또는 무엇에 도전할 때 많은 힘과 노력 등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문장들을 방 안에 나열해가면서 딸아이는 학창 시절부터 자신의 삶의 태도를 만들어 갔나 보다.
이 아이는 사방에 글을 써놓는 것만 아니라 여러 가지 소리들도 내곤 했다. 딸아이가 집에 있으면 집안이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 찼다. 기분이 좋을 때는 집안이 꽉 찬 느낌이 들고 기분이 나쁠 때는 시끄러워서 짜증이 났다.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로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었다가
갑자기 귀를 찢을 듯한 트럼펫 소리를 내서 내 낮잠을 화들짝 깨우기도 했으며
혼자 배워서 익힌 기타를 치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 노랫소리는 차마 듣기 힘들었다. 트럼펫 소리보다도 딸아이의 노랫소리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종종 내 두 귀를 막았다. 노래 하나는 진짜 못했다 (어른이 된 딸아이는 지금도 노래는 못하더라) ㅋㅋㅋ.
아침마다 "옴"소리를 내고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며
저녁에는 아령을 들면서 "끙끙"소리를 냈다.
운동을 마치면 프로틴(Protein), 냉동된 과일, 요구르트를 섞어서 "웽웽" 믹서를 돌렸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하하하" 집이 떠나갈 듯이 웃어댔다.
방에서 거실, 화장실, 그리고 부엌을 넘나드는 딸아이 걸음걸이에서 "쿵쾅 쿵쾅" 소리가 났다. 이 아이 방 마룻바닥이 몇 년이나 갈런지 걱정이었다 (다행히 아직도 딸아이 방바닥은 멀쩡하다) ㅎㅎㅎ.
포엣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는 본인이 쓴 자유시를 외워서 낭독하는 대회를 수시로 나가고 준비하느라 방안에서도 쉼 없이 목소리를 가다듬는 "에헴" 소리들이 났다. 우리 부부는 수시로 딸아이의 낭독하는 소리를 착각해서 집에 누가 왔나 묻기도 했다.
샤워를 할 때면 꼭 노래를 크게 틀었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보다도 더 큰 목청으로 "블라블라" 노래를 했다.
내가 졍크 푸드(과자 같은 거)를 사 오면 건강과 음식에 대해 내게 일장 연설을 했다.
내가 플라스틱 비닐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지구를 보호해라 아껴라 왜 작은 행동들부터 옮기지 않느냐고 잔소리를 하고 강연을 했다. 그러나 옳은 소리를 하는 딸아이 앞에서 나는 쮝소리도 못했다.
그 아이가 만들어 내는 이런 많은 다양한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집안은 허전했다. 그동안 딸아이 혼자 이 집에서 살았던 것처럼 그 아이 하나가 없으니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이 집안에는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우리 아들은 집에 들어왔는지 방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늘 소리가 없다. 목소리도 저음이고 말도 천천히 하고 음식도 천천히 먹었다. 딸아이는 목소리도 높고, 말도 빨리 하고, 음식도 빨리 먹었다.
딸아이가 만들어 냈던 그 다양한 소리들이 그리웠다. 눈을 뜨면 "옴"하는 요가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부엌에 가면 "웽웽"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며, 화장실에 가면 "블라블라" 큰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집에 없지만 이 아이의 소리들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가 환청을 듣는구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딸아이가 한 달간 집을 비운 사이 나는 그동안 내 딸아이가 만들어 냈던 그 다양한 소리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 소리들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나의 삶도 행복하고 건강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된 딸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소리들을 낸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소리들이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 반려식물들과 대화하는 소리, 한층 낮아진 전화 통화 소리 등. 성인이 되어 이제는 서로 떨어져 살지만 나는 내 귀와 내 가슴에 담겨있는 딸아이의 다양한 소리들을 통해서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내 딸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