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식 언어
남편이 외국인이다 보니 한국에 있을 때부터 '둘이서 어느 나라 말로 얘기해?'라는 질문을 상당히 많이 들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90% 영어다. 우리 둘의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한국어나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내가 제안도 여러 번 했지만) 남편은 꾸준히 No라고 한다.
관계의 밸런스 맞추기
남편이 제3 국의 말인 영어를 공용어로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힘의 균형이다. 국제커플인 우리가 나의 모국인 한국에 살거나 그의 모국인 프랑스에 살 경우 현지어가 유창한 사람이 갑이라 부부간에 갑을 관계는 맺지 말자라는 것이 그의 주장.
한국에서는 모든 행정업무를 한국어로 처리해야 하니 내가 책임지고 챙겨야 하고, 프랑스에 와서는 이 악명 높은 프랑스의 행정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 남편의 책임지고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3국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야 누구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한 사람이 계속 수고를 하게 되고, 상대방은 계속 부탁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거 이런 뜻 맞아?", "거기 예약 좀 해줘.", "서류 어디에 내면 되는지 확인 좀 해줘" 등등등
나와 남편, 우리 둘 다 자아가 강한 편이고 자립심도 강해서 아무리 배우자라도 상대방에게 의존하는 성격은 아니다 보니 을의 위치(외국인으로 살면 을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그랬고, 프랑스에서는 내가 그렇다)가 영 답답하다.
실제로 남편의 한국어는 내 프랑스어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유창한 편이지만 집에서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얘기하자는 것이 그의 입장. 둘 다 영어 네이티브는 아니다 보니 모국어처럼 감정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재로서는 영어가 가장 편하다.
특히 언쟁이라도 생기는 경우 서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단어를 고심해서 고르다 보니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확실히 싸우는 빈도가 적은 편이다. 기억에 날 정도로 싸운 적은 8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니 뭐. 서로 한국어나 프랑스어는 고운 말만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서로 좋은 말만 가르쳐 준다. 한국에서는 입이 거친 편인 나도 영어나 프랑스어로 얘기할 땐 조신해지는 편이라 언어가 달라지니 다른 페르소나가 튀어나오는 듯.
우리처럼 나라를 바꿔서 살아보는 것도 진짜 괜찮은 것 같다. 프랑스에서 직접 살면서 현지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으니 그 전에는 답답했던 부분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고나 할까(전부는 아니다. 아직도 미스테리인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