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데서 스몰톡하는 수다쟁이 남편
벌써 프랑스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비자 연장을 위해 경시청에 산더미 같은 서류를 제출하고 헤세 피세(수령증)를 받아왔다. 9월까지 유효한 종이인데 그전에 플라스틱 카드로 된 체류증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비자 연장은 큰 일이다 보니 서류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경시청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서류만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는 경험자들의 후기를 참고 삼아 서류를 여러 번 체크한 뒤에 길을 나섰다. 뭐든 미리 준비해야 되는 나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근처에서 아침 겸 점심도 먹었다.
두근두근. 경시청 입구에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좀 살벌했다.
창구A , 한달 전에 서류미비로 재방문 한 남자.
직원이 엄청 짜증내면서 서류 좀 제대로 챙겨오라고 소리치고, 남자도 어쩔줄을 몰라 하다가 결국은 서류 다 제출하고 갔다. 남편도 옆에서 저 직원은 좀 무례하다고. 저 창구로 안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꼭 이런 이야기 하면..)
창구B, 유럽 다른 나라의 체류 비자를 가지고 프랑스에서 작년부터 일을 했던 여자. 유럽 연합에서는 일해도 되는 줄 알았다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당일 추방령을 받았다. 유럽 연합안에서 비자가 필요없는 건 유럽연합 국민들이지 그 비자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뭐야 이 분위기 무서워..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지.. 우리는 창구A의 무서운 직원 앞으로 가게 되었다.
서류 뭉치를 제출하니 Visa validation 서류는 어디있냐고 대뜸 묻던 그녀.
남편 : ”응? 난 서류 잘 몰라요. 근데 이거 비싼 변호사(아니고 대행사지만)가 서류 준비해 준거라서 안에 다 있을 거예요. 근데 오늘 날씨 좋죠? 이 도시에서 곧 돼지 축제 한다는데 어때요?“ (싱글벙글)
직원 : “서류 정리 잘 되어 있네요. 한번 보죠. (철벽) 체류증에 마담 킴 성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남편 성으로? 아니면 이름 옆에 배우자 누구 이렇게 하실건가요?“
나 : “아니요” (단호)
남편 : “보셨죠? 와이프는 성 안바꾼대요. 한국에서는 잘 안바꾸긴 해요 서류 정리 다 하기도 귀찮고..“
직원 : “그쵸! 남편 성으로 안바꿔도 상관 없어요!” (웃음)
남편 : “로맨스는 다 죽었다니까요. 몇년 전에는 엄청 다정했는데 이제는 뭐..”
남편이 이렇게 너스레를 떨자 그 무섭던 직원도 웃으면서 서류을 챙기며 다음 일정에 대해서 안내해주었다. 응 뭐야? 앞에 사람이랑 온도차 무엇..?
그러고보면 이런 상황이 종종 있었다. 남편은 좀 무뚝뚝한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능글거리면서 주변 사람들이랑 수다도 떨고 딱딱한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드는.
대체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니 첫번째는 태도라고 했다. 처음에 인사할 때의 자세나 제스쳐. 아쉬운 상황이라도 주눅들지 말고 잘못된 것 같아도 짜증내지 말고 당당하지만 겸손하게.
그리고 두번째는 상대방이랑 접점을 만들기라고. 공통점을 찾기위해서 계속 말을 걸어보는게 좋다고. 처음에는 대답도 건성건성 이었지만 와이프가 성 안바꾸겠다고 하니까 적극적으로 대답하는것을 봤을 때 페미니스트인 것 같았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에 맞게 또 얘기하면 된다고.
와.. 성격급한 나는 처음에 서류 이거 없냐고 물어봤을 때 바로 짜증이 치밀었을텐데. 남편은 거기다 너스레까지 떨면서 우리는 잘 모르지만 대행사에서 알아서 준비 했을테니 안에 있을 거라고 잘 얘기하고 분위기 부드럽게 만드려고 계속 노력했다. 우리가 서류 준비는 잘 했지만 싸데팡 ça depend, 케바케의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히 잘 지나간 것 같다. 여튼 여유로운 태도가 좀 중요한 것 같다. 프랑스에 살면서 나도 좀 둥글둥글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