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일 줄이야
나는 기분이 꿀꿀해지면 매운 게 땡긴다. 매운걸 잘 먹는 편이 아닌데도 그렇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너구리를 끓여 먹거나 떡볶이를 매콤하게 만들어서 아구아구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다. 요즘은 짜증 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퇴근하고 매운 음식 찾는 날이 많아졌다. (불쌍한 내 위장)
한국에 있을 때는 기운 빠질 때 돼지국밥을 자주 먹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영 먹기가 쉽지 않다. 다음에 한식당 많은 파리 가서 한 번 먹어볼까..
그의 소울푸드는 햄버거. 뭘 먹어도 평가가 박한 그는 의외로 맥도널드 빅맥을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평생 워킹맘으로 일하셨지만 조부모님 댁 코앞에서 살아서 남편과 시동생은 거의 할머니가 지어주신 집밥을 먹고 자랐다. 이렇게 보수적인 어른들 틈에서 자란 덕에 어릴 때는 패스트푸드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가 햄버거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밥 할 기운도 없거나 너무 바쁜 날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그것도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인 입장에서 맥도널드는 최악의 선택이었을 텐데 남편은 어쩌다 한번 가게 되는 맥도널드가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남편 성화에 맥도널드에 가는데, 내가 뺏어먹는 것도 아니건만 감자튀김을 거의 입에 들이붓듯이 먹어치운다. 누구 안 쫓아오니까 좀 천천히 먹으라고 해도 뭔가 빨리 먹고 싶어 지는 맛이라고. 그런데 기분 탓인지 재료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보다 프랑스 맥도널드가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재료가 좋은가..
여하튼 어디 외식이라도 하러 나가면 그는 열에 아홉은 버거를 선택한다. 빵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는데 버거가 맛있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남들은 프랑스인 남편 입맛 맞추기 어렵지 않냐고 먹는데 엄청 까다롭지 않냐고 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주는 건 거의 다 잘 먹고, 고기라면 뭐든지 맛있고, 꿀꿀해 보이는 날에 햄버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사르르 기분이 풀리니 이렇게 쉬운 남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프랑스에 오고 난 뒤로 난 오히려 한식 실력이 늘고 있는데 그가 요즘 꽂힌 건 제육덮밥과 장조림.
두고두고 먹으려고 장조림을 잔뜩 만들어 뒀는데 그는 이걸 두 끼만에 끝장을 내더니 장 보러 가서 장바구니에 양지머리를 잔뜩 담아왔다. 주말마다 장조림 만들어 먹자고. (니가 만드냐 내가 만들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입에 맞는, 속을 채워주는 음식을 먹고 있자면 허한 마음도 채워지는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