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내가 잘라주마
남편은 고집이 센 편이다. 특히 자기가 싫어하는 건 절대 안 한다. 대표적으로 '비행기 타기'와 '운전하기'가 있다. 비행기는 의사한테 안정제나 수면제 처방을 받아 약을 먹어야 탈 수 있어서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이용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결혼식을 하러 프랑스에 다녀갔을 때, 그리고 내가 프랑스로 파견 와서 온 가족이 넘어와야 했을 때.
오토바이는 곧잘 타는 남편은 이상하게 자동차 운전을 꺼린다. 애초에 운전면허도 없어서 한국에 살 때부터 프랑스보다 싸니까 여기 있을 때 따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계속 미루더니 결국 프랑스에 와서도 같은 논쟁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땅덩어리가 크고 기차가 그 모든 소도시들을 다 잇는 것도 아니다 보니 우리가 사는 곳에서 시댁까지는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되고 두 명이 이동하면 수십만 원이라 운전을 하는 편이 낫다. 문제는 그 운전을 나만 한다는 것.. 남편한테 좀 나눠서 운전하게 면허 좀 따라고 했더니 그냥 시댁에 가지 말잔다. 말을 말자.
여하튼 이 한 고집 하는 분과 몇 년 살다 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아 그래 그렇구나'가 되는데, 이 남자가 이번에는 미용실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 살 때는 남편이 총각 시절부터 10년 넘게 다니던 미용실이 있는데, 그 원장님이 머리를 남편 취향에 맞게 잘해주셔서 거기만 다녔는데. 프랑스에 오고 나서 시골 미용실에 두 번 가보더니 한 번 다듬는데 20유로가 넘는 데다 딱히 마음에 들지도 않으니 나보고 다듬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쉘든과 페니의 이발 에피소드가 생각나네)
내가?? 내 앞머리도 잘라본 적이 없는데 니 머리를??
첫 번째 시도
망해도 금방 기니까 부담 가지지 말라던 그. 까르푸에서 남성용 커트 기를 구입해서 조심스럽게 밀어 보았다. 첫 시도에 그가 좋아하는 짧은 상고머리와 흡사하게 다듬어졌다. 한국에 계신 미용실 원장님한테도 내가 했다고 자랑하며 사진을 보냈더니, 초보자 치고 제법이라는 말도 들었다.
두 번째 시도
아무래도 첫 번째 시도는 초심자의 운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발기로 그의 머리를 다듬다가 순간 손이 미끄러져서 그의 머리에 땜빵을 만들고 만 것이다. 음.. 어쩔 수 없지. 그냥 다 밀자! 그날 남편 머리는 5mm 이발기로 슥삭 하고 밀렸다. 하필 겨울이었는데 머리가 많이 추웠을 것이다.
세 번째 시도
지난번에 그의 머리를 꼭 갓 훈련소 입대한 군인처럼 박박 밀고 나서는 영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어느새 그의 머리카락이 또 덥수룩하게 자라났다. 음.. 아무래도 이렇게는 안 되겠어서 유튜브에 남자 헤어커트로 검색을 해보았다. 생각보다 초보자를 위한 재능기부 영상들이 많아서 두어 개를 찾아보고 나니 자신감이 샘솟는다.
귀 위 손가락 두 마디 윗부분까지 가위로 커트를 해서 선을 그어주고, 6mm 이발기로 아랫부분을 정리한 뒤 3mm 이발기로 그라데이션 주기.
고양이들 털 정리하는 가위와 빗으로 남편 머리를 유튜브에 나온 튜토리얼을 따라 다듬어 보았다. 삐죽삐죽했던 지난번 보다 훨씬 정돈된 모습.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남편 왈, 미용실 커트 비용에 대해서 남자 커트 비용이 여자 커트보다 많이 저렴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어차피 3주마다 정리해야 하는데 너무 비싸면 자기 같은 사람은 집에서 다듬는다는 것이다. 하긴 좀 망해도 금방 복구할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넌 휴직상태라 보는 눈이 없으니 이렇게 집에서 자를 수 있다는 것을 있지 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