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몽상가

by 김문

“N들이 ‘아무 생각 안 해.’ 라고 했을 땐, 진짜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입 밖으로 꺼낼 만한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래.”

오늘은 늘, 머릿속이 복잡하고, 늘, 생각이 끊기지 않는 나, 대한민국의 몽상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그럼 S들은 ‘아무 생각 안 해.’ 라고 하면 정말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생각을 안 할 수도 있다고?”

“그냥 안 하면 되잖아.”

“그거 자동으로 나오는 거 아니었어?”

생각, 그거 어떻게 안 하는 건데. 어떻게 멈추는 건데. 숨을 쉬는 동안 단 한 번도 생각을 멈춰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가끔은 부러울 때도 있다. 나도 아무 생각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는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지금의 나는 정말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생각인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내 오감을 건드리는 게 있다면 그 길로 바로 생각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우리가 살면서 오감을 가만히 놔뒀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우주에 떠도는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다. 쓸모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이전에 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에 잠식해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떤 자극을 받게 되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하나 집어서 꺼낸다. 머릿속에서 문득 꺼낸 생각의 종류는 다양하다.


먼저, ‘이거 나중에 해야지.’ 미뤄뒀다 까먹은 일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일을 다시 처리하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다시 미뤄두고 뇌 속에 저장해놓기도 한다. ‘아니, 미뤄둔 일이 있으면 바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내가 미뤄둔 일이라면 급하게 처리하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라면 내가 잊어버렸을 리가 없다.


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고민이 생각나기도 한다. 정말 갑자기 어느 한 순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생각나면서, ‘앞으로 이렇게 살면 되겠다.’ 라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은 계획이 확실한 경우엔 이런 생각이 드는데, 최근엔 이런 확신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미래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은 우울한 편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앞으로 몇십 년을 이렇게 살 자신이 있는가?’, ‘모아둔 돈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해서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을까?’, ’삶의 목표가 없는데 괜찮은 건가?’ 등. 미래는 불확실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항상 세워 놓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각은 우울하게 펼쳐진다. 물론, 현재 삶이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하지만, 따분한 일상이 계속될 거라는 생각, 인생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단 생각들이 겹치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우울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잘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길을 걷다가, 어떤 풍경을 보다가, 가로등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다가 이전에 들었던 지식 조각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일화를 하나 들어보자면, 테라스에 심겨져 있는 나무를 보며 취미로 그림을 배웠을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던 적이 있었다. ‘자연은 선이 불규칙적이고, 건물이나 사물은 선이 규칙적이다.’ 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서,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도심에서 오래 살면 살수록 자연이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출근해서, 등교해서 규칙적인 선들만 보고 살았다가, 제멋대로 자란 장관을 보는데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었다. 이런 식으로 뭔가 하나를 발견하면, 그에 관련된 지식 조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만약에’에서 시작하는 영화 한 편을 뚝딱 제작하기도 하고, 남에게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감성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은 내 자의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다. 나무를 보면 나무에 관한 생각이 튀어나오고, 바람이 불면 ‘세상은 어제와 같고’ 라는 가사가 생각나면서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한다. 생각의 축복이 끊임없는 N에겐 정녕 생각을 안 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래서 찾은 해결책은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 숨만 쉬어도 생각거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N에게 생각을 안 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있으면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생각을 안 할 순 없으니 생각을 덜 함으로서 머릿속을 비교적 단순하게 만드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그럼 생각을 덜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감을 나에게로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맞춰 놓고, 혼자서 쉬는 것이다. 물론 갑자기 튀어나오는 생각을 막을 순 없지만, 튀어나오는 생각의 종류를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특히, 퇴근 후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밤하늘을 바라다 보는 걸 좋아한다. 집 앞 골목에서 가로등 불빛 아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밤하늘을 바라본다. 이 때, 선곡이 중요하다. 음악이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에 생각의 방향은 대부분 음악 분위기를 따라간다. 그래서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우울한 생각에 빠지게 되고,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도 덩달아 잔잔해진다. 그래서 어떤 생각에 빠지고 싶느냐에 따라 선곡을 한다.


이 때만큼은 내가 어떤 감성에 젖어 있어도 허용이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 땐 ‘너 F야?’ 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아주 낭만적이고 아주 허무맹랑한 생각에 빠진다. 도심의 밤하늘에 겨우 보이는 별들을 보면서, 도심의 밤하늘에서 별을 좇는 게 낭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낭만만을 좇아가기엔 내 주변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그렇기에 별을 좇는 것도 좋지만, 별에 집착하여 내 소중한 것들을 등한시하지 말자는, 별처럼 아름다운 생각을 한다. 또는, 밤하늘의 달이 예쁘게 떠 있는 것을 보면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준다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고, 달이라고 생각했던 게 가까이에서 보니 가로등 불빛이었던 일화를 생각하면서 생각보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은 가까이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들은 대부분 추상적이다. 이미지로, 느낌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빠져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의 속도를 잠시 늦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끔은 내가 시인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곧바로 생각을 접는다. 아마 별이 떠오르는, 달이 떠오르는 밤이 아니라면, 시인 같은 감성도 끝나겠지. 그래도, 적어도, 내 복잡한 머릿 속은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까지의 글감이 계속 토론 주제로만 이어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일상편으로 글을 써 봤다. 머릿 속의 생각이 다양하다 보니 글이 잘 써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글이 잘 안 나왔다. 글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쓰고 지우고, 차라리 다른 주제로 글을 쓸까 하다가 겨우 글을 완성했다. 쓰고 보니 예상과 다르게 나를 위로하는 글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쓰기 힘들었던 거 아닐까.


머릿 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몽상가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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