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주제 하나 던져주면 알아서 몇 시간을 잘 떠들고, 때로는 지붕을 날려 버리기까지. 오늘은 ‘팟칭팟’과 함께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팟칭팟’, 같은 회사에서 만난 직장 동료이다. 누군가는 ‘직장 동료랑 이렇게까지 친하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우리도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게 신기하다. 성격 다른 5명이 험지에서 같이 구르며 생긴 전우애와 각종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보낸 시간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관계는 이제 각자의 인생에서 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비록 지금은 전부 퇴사하고 각자의 회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단톡방에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며 지낸다. 우리는 퇴사를 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 번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이 인연을 끊고 싶지 않다는 강한 열망도 있었지만,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팟칭팟’이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는가. 이런 이유로 퇴사를 하고도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눈치채셨겠지만, 이 5명의 공통점은 전부 다 N이라는 것이다. 우리끼리 아직도 ‘어떻게 전 회사는 이런 사람들만 뽑았는가?’ 하며 신기해한다. 전 회사에 악감정은 다분하지만, 이 5명을 회사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 모아준 것 하나만큼은 참 고맙다.
이 날은 ‘팟칭팟’이 처음으로 파티룸에서 1박을 했다. 우리는 그 전날부터 들떠 있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어떤 잠옷을 가져갈 건지 자랑하였다. 도착 시간은 다양했다. 6시에 퇴근한 나와 현씨는 7시쯤에 도착하였고, 회사가 변두리에 위치한 백씨는 조금 늦게 도착하였다. 이 날, 안타깝게 코로나에 걸려버린 본씨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집에서 쉬기로 하였다. 세 명이서 모인 시간은 8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영씨였다. 영씨가 일이 10시에 끝나는 바람에 예상 도착 시간은 10시가 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 주문은 10시에 하고 그 전까진 과자와 술을 먹으며 영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영씨가 도착했고,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다. 너무 오래 되어서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다만 분명한 건, 전 회사 욕을 안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들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점이라 전 회사 욕을 신랄하게 하며, 각자의 회사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사실을 뿌듯해 하였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분명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비정상이에요.”
“맞아요. 사랑하면 평소에 내리던 판단이랑 딴판인 생각을 해요.”
“그니까 주변에서 말리면 한 번쯤 들어봐야 돼요. 사랑을 하면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서 남들이 보는게 제일 정확해요.”
“근데 사랑을 하면 그런 말도 안 들려요. 본인이 깨달아야 됨.”
“맞아요. 거의 ‘고요 속의 외침’ 이라니까요.”
아마 대충 이런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영씨가 가져온 와인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슬픈 건 와인 자체에 집중된 게 아니라, 하필 파티룸에 있는 와인 오프너가 말을 듣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거 이렇게 따는 거 맞아요?”
“근데 왜 안 되지?”
“이상하다. 이 오프너 고장났나 봐요. 오프너 없이 코르크 어떻게 따요?”
그리고 우리는 각자 인터넷에서 ‘오프너 없이 와인 따는 법’을 검색해 각자 찾은 방법으로 와인 코르크 따기를 시도하였다. 드라이기로 병 입구 데우기, 신발 안에 넣고 매우 치기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와인을 따지 못했다. 급기야 와인을 사온 영씨가 와인이 너무 아깝다며 코르크를 젓가락으로 팠다. 결국 코르크를 파서 와인이 나올 길을 뚫을 수 있었지만, 혹자의 말로 ‘와인 맛이 아니라 코르크 맛이 느껴진다.’는 아주 슬픈 사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애초에 포도 알러지가 있어서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
‘와인 오프너 없이 코르크 따기’로 한참 열을 올리던 우리는 파티룸에 자리잡고 있는 노래방 기계를 발견하였다. 흥의 민족인 우리가 노래방 기계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노래방 기계 당장 켜서 노래를 불렀다. 아주 다양한 노래가 나왔다. ‘팟칭팟’ 내에서 뮤덕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뮤덕의 기개를 보여주겠다며 레베카를 열창하였고, 백씨는 한때 열심히 덕질했던 락을 불렀다. 현씨와 영씨는 나에게 ‘이 노래야말로 오타쿠 필수교양 제 1덕목’이라며 에반게리온 ost를 불렀다. 이런 저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 새 새벽 3시가 되었다.
거의 3시간동안 열창하고 열광하느라 목도 몸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이제 여기서 깔끔하게 씻고 누우면 된다. 그래서 다들 정리하고 침대로 들어갈 분위기였다. 하지만,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영 맘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백씨였다. 백씨는 이제 자려고 들어가는 우리를 붙잡고
“어디가요? 앉아봐요.”
“……예?”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야죠.”
라고 했다. 아마 셋은 말은 안 했지만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 크로스핏을 해서 그런지 체력이 괴물이구나. 아니, 그것과 별개로 우리가 아직 할 얘기가 남아있었나? 정말 일말의 체력도 남김없이 다 쓴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 우리도 홀린 듯이 다시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리고 이어간 이야기는 아까 얘기했던 사랑에 관련된 주제였다.
“여러분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 둘 중에 뭐가 더 좋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아요. 아무리 나를 좋아하더라도 이성적 감정이 안 생기면 끝까지 안 생기더라구요.”
“아 그래요? 저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을 결국엔 저도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그 이후로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다음 날 도로주행 연습이 있던 나는 먼저 자겠다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그 이후로도 계속 사랑에 대해서 토론했다. 다음 날, 체크아웃이 10시라 아침에 부랴부랴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어제 몇 시까지 이야기했냐고 물었다. 현씨는 어제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새벽 5시라고 이야기했다.
아침에 감지 못해 뜬 눈으로 체크아웃을 하며, 나는 이대로 다 집에 갈 줄 알았다. 하지만, 10시 체크아웃을 하자마자 근처 카페에서 3시간 동안 또 사랑이야기로 토론을 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써 보려고 한다.
이래서 N들이 무섭다. 시간과 체력만 허락한다면 한 주제를 가지고 밤까지 샐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성향이 안 맞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피곤한 성격이겠지만, 잘 맞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내 주변에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득하게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팟칭팟’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시시콜콜한 의견에 대해 진지하게 들어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4명이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팟칭팟’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영원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영원히 함께하자는 소리는 지킬 수 없는 허망한 약속 같다. 그래서 ‘팟칭팟’에게도 영원히 함께하자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다만, 정말 정말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