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탈락’과 ‘재도전’의 반복이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로 얼룩진 커넬 샌더스의 삶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1008번 끝에 KFC를 세우다
-IT 동아 강일용 기자 보도 중에서
62세에 직접 만든 조리법으로 창업하여 특별한 성공을 한 그의 이름에 붙어있는 커넬(대령)은 군대 계급이 아니다. 미국의 주지사가 남부의 신사들에게 붙여주는 경칭이다. 미스터(Mr)나 서(Sir) 보다 높은 존경의 의미가 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KFC의 기원이 된 '오리지널 치킨‘의 조리법을 스스로 창안한 점이고
둘째는 그 자신이 KFC의 대표 모델이 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창업에 도전해 세계 1등의 치킨 프랜차이즈를 일궈냈다는 특별함이다.
그는 오하이오 강을 오가는 정기 연락선을 운항하는 최초의 사업은 실패했다. 두 번째 주유소 사업은 순조롭다가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 오면서 다시 실패했다. 그는 실패에 굴해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이번에는 다시 주유소 사업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음식까지 제공하는 자동차 카페를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그는 주유소 사업은 그만두고 레스토랑으로 전업한 것이다. 하지만 1939년 샌더스 카페에 큰 불이나 모든 것이 불타버리면서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제2차 세계 대전에 대비하여 민간에 가스를 공급하는 것을 중단하고 어쩔 수 없이 사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60살이 넘은 그에게 남은 연금과 낡은 포드 자동차와 몇 벌밖에 없는 양복뿐이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조리법과 레시피를 활용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의 조리법을 팔고 무려 1008번의 거절을 당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1952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피트 하먼이라는 사업가를 만나서 결구 세계치대의 치킨 프랜차이즈 KFC를 만들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위치한 피크 하먼의 KFC 매장은 반세기가 넘게 지금까지 KFC 1호점으로 영업 중이다.
아픔은 상처를 남긴다. 인생은 아픔이 남긴 상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상처를 늘 떠올리면서 힘들어하고 상처로 인해 마치 인생 전체가 망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암울한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아픈 상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본인이 그 상처를 받게 된 이유를 분석해 보고 거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꼼꼼하게 살피며 교훈을 얻는 사람은 점점 더 탄탄해지는 삶을 살기 마련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험에 생애 첫 탈락을 하고 삶이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후기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또다시 대학시험에 탈락했다. 대학시험을 보던 날 아버지께서 바쁜 농사일을 제쳐놓고 일찍 달려오셔서 힘을 북돋아 주셨다. 하지만 결과는 다시 씁쓸한 탈락을 경험했다.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힘겨운 재수를 해야 했다.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셔서 재수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되어 혼자 공부를 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내가 2회 졸업생으로 신설된 학교였기에 도움받을 수 있는 선배도 그다지 없었다. 나는 첫 시험에 탈락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영어에 자신이 있었기에 다른 과목들은 웬만큼만 하면 어렵지 않게 합격하리라 생각했다.
대학시험 3개월을 앞두고 근근이 재수학원에서 막바지 시험을 다시 점검했다. 결과는 다시 암울했다. 내가 대학 시험을 치를 때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시험을 봤다. 전기 시험에 응시하고 다시 탈락했다. 눔 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백지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숨이 막혔다. 다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후기에 인생을 걸어야 했다. 결국, 명지대학교 영문학과에 합격했다. 이때의 영어 전공이 1990년 롯데면세점에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육체적 질병이 와서 미래를 알 수 없는 휴학을 하고 좌절감에 빠졌다. 하지만 어머님의 무한한 헌신으로 회복을 하고 1년 만에 기적처럼 복학을 했다. 그리고 군대 입대를 두 번이나 징집 면제를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도 같은 또래의 친구보다 늦게 졸업을 했다. 그런데 또다시 대기업 취업 서류전형에서 취업에 실패했다.
고등학교, 대학시험과 대기업 취업에서 연속 쓰라린 탈락을 했다. 나는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안 풀리는가 좌절을 했다. 그러나 취업에 실패한 것은 대학 이전 탈락에 비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탈락의 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락했다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다른 길을 찾았다. 수시 채용인 글로벌 기업 하얏트 호텔에 극적으로 입사를 한 것이다.
2005년 불리한 스펙으로 롯데면세점에서 힘겹게 부장 승진을 하고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직장인의 꽃 억대 연봉의 임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항암 치료를 해야 하여 직장인의 길이 마감이 될 수 있는 휴직을 했다. 인생이 더 이상 미래가 없고 완전히 무너졌다. 치료부터 회복까지 1년 7개월을 휴직한 후 극적으로 복직을 하고 25년 만에 대기업 임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인생의 변곡점에서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여러 번의 시험 탈락에서 인생의 맷집과 끈기를 배우고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탈락은 끝이 아니다. 나에게 다른 방식을 시도하라는 신호일뿐이다.
인생은 ‘탈락’과 ‘재도전’의 반복이다. 열쇠는 생각의 검색어 안에 내장된 열정의 온도와 긍정적인 마인드에 달려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