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 학회를 다녀와서 (1)

나랑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by 웨지감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종강과 함께 끝나고 또 잔잔하게 바쁜 나날의 지속. 그사이에 나는 첫 해외 학회를 다녀왔다.


나는 국내 학회는 몇 번 가봤지만, 해외는 처음이었다. 아주 설레고 떨려서 몇 날 며칠을 학회 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라면 좋았겠지만. 으레 그렇듯 나는 시험과 과제와 업무로 아주 시름시름 병을 앓고 다녔다. 출국 전날에도 나는 조교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하지만 잠을 덜 자도 좋았다. 해외 학회란 나 같은 초짜 연구자에게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지. 심지어 요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학회 일정이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어서 정말 오래간만에 열리는 해외 학회였다.






학회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었다. 고대했던 해외 학회라고 해도 꼬박 5일 동안 쉬지 않고 듣고 싶은 주제를 들으러 장소를 옮겨 다니고, 강연을 듣고, 포스터를 구경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연락처를 교환하는 일은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특히 이 모든 걸 영어로 해야 한다면 더더욱. MBTI가 부동의 I로 시작하는 나는 똑같이 말수가 적은 상대와 스몰토크를 해야만 했을 때는 딱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회가 진행되는 낮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 연구실 동료들도 각자 제가 관심 있는 주제를 쫓아 흩어졌다 모였다 하기를 반복했다. 연구실 단톡방에서는 쉬지 않고 같이 강연 들을 사람을 구하는 구인 톡이 올라왔다. 단 음료를 싫어하는 나조차도 학회에서 제공하는 커피나 차에다 설탕을 잔뜩 뿌려서 당과 카페인으로라도 뇌를 깨워야만 간신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시간을 보내고 학회장에서 나올 때쯤에는 함께 간 연구실 모든 학생이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곤 했다.


학회장에 들어가 수많은 포스터 앞에 서서 가장 처음으로 느낀 점은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필드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연구 주제가 나만의 고민거리가 아니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연구하고 있으면 가끔 불안하고 외로울 때가 있다. 내가 어딘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치 없는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침잠할 때가 있었다. 신규 논문을 읽는다고 해도 활자로 적힌 이름들이 내게 큰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학회장에 들어가 실체가 있는 사람들을 보니 나만이 외로이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논문에서만 보던 얼굴 없는 이름들이 내 앞에서 걷고 강연하는 걸 보니 비로소 이들이 환상 속 인물이 아니고 살아 숨 쉬는 학자라는 게 실감 났다. 참 신기하고 위안이 되는 경험이었다.


구두 발표 (oral session)에서는 우수 포스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대부분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이거나 포닥 (post doctor) 과정생이었지만 간혹 석사과정 학생도 있었다. 다들 어쩜 저렇게 흥미로운 연구를 하는지, 어쩜 저렇게 조리 있게 잘 설명하고 질문에도 멋지게 대답하는지 신기했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큰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될까? 저기 서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부러웠다. 눈여겨봤던 포스터 몇 개에는 질문도 던졌다. 대답해 주는 저자들의 눈이 자부심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잠시 저 몇십 명 앞에 서서 발표하는 나를 그려보았다. 과연 내가 저기 설 수 있을까? 갈 길이 멀겠지만 설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내 마음속 버킷리스트에 한 줄이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해외 학회에 다녀와서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동기부여였다. 저기 강연장에 서서 내 연구를 소개하고 싶다는 것. 그럴 수 있도록 공부도 연구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 그게 교수님이 나 같은 초짜 연구생도 해외 학회를 보내주시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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