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에 대한 단상

아무도 없는 연구실의 짜릿함을 아십니까

by 웨지감자

꿀 같은 일요일. 날씨도 너무 좋은 봄날. 완벽한 주말 한낮. 지금, 이 순간 나는 연구실에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수혈해 가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나는 주말 출근을 싫어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연구실에 나오곤 한다. 내가 주말에도 자주 출근하는 이유는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말에 일을 하면 자괴감을 방지할 수 있다. 극강 집순이인 나는 주말에 꼼짝도 하지 않고 이불에 콕 처박혀 있을 때가 부지기수다.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유튜브를 보거나 밀린 웹툰을 본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면 눈 깜짝할 새 월요일이 된다. 그러면 나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채 일주일을 시작하고 만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뭐라도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주말에 연구실에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더 나온다고 연구에 엄청난 진전은 없다. 하지만 주말 출근으로 다음 날에 조금 더 느긋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자괴감도 덜하다.


무엇보다 월요병이 없어진다. 월요병은 관성적으로 더 쉬려고 하는 나를 억지로 일터에 데려가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 심적으로 매우 괴롭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정이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주말에 일을 하면 월요병이랑 작별할 수 있다!


주말에 연구실에 나오면 연구 리듬도 잃지 않을 수 있다. 주말에 나는 주로 느긋한 마음으로 밀린 숙제를 풀듯이 공부하고 연구한다. 대개는 그동안의 연구 흐름을 복기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밟았고, 어떤 목적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성을 체크하는 것이다. 주중에 막힌 부분이 왜 생겼는지, 어딘가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 연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세부적인 내용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마디로 나무 대신 숲을 볼 수 있다.


단순노동도 많이 한다. 아주 조금만 집중해서 자잘한 노다가성 업무를 후다닥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집중해야만 하는 중요한 분석은 주중에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주말 출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장점이 단점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주말은 주말다워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일하다가 잘 안되면 다 때려치우고 놀러 나간다. 주말 출근도 다 나 편해지자고 하는 일 아닌가? 괜히 나와서 일 효율 떨어지면 되레 곤란해진다.

오늘도 나는 주말에 연구실에 나왔지만 하는 거라곤 프로그램 돌려놓고 남는 시간에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이다. 일인 듯 아닌 듯, 연구인 듯 아닌 듯 이렇게 보내는 주말도 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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