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였습니다. 어른들이 건강검진하듯 아이들도 학교가기 전에 마음 건강을 살펴주면 좋다고 지인이 제안해주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아이는 꽤 긴 시간 검사를 받았습니다. 보통 2시간이면 끝난다는 검사를 딸은 4시간을 해야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병명, '조용한 ADHD'.
폭력성도, 그다지 눈에 띄는 산만함도 없던 딸이었기에 당최 이해가 안됐습니다. 의사선생님 설명으로는 과잉행동은 없지만 주의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ADHD'라고 불린다고 했습니다.
주로 여자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대개는 눈에 띄는 문제가 없어 중학생쯤에나 병원에 온다고 했습니다. 학습이나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오게 되어 검사를 해보면 상당수가 '조용한 ADHD'로 나온다고.
늦게 발견하면 그만큼 치료가 오래 걸린다며, 제 딸은 빨리 발견한 케이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집중력이 평균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 놀이치료 보다 약물치료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딸은 어려서부터 무척 밝고 무척 활동적이었습니다. 사실은 그 정도가 과한 면이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기 전까지는 밖에 나가기가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잘 걷다가 개미가 보이면 주워 먹고, 생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을 경계 없이 따라가고, 음악이 나오면 다른 이의 시선 상관없이 신나게 춤을 추고, 책을 읽으려고 펼쳤다가도 언제그랬냐는 듯 장난감을 가지러 가고...그야말로 예측불허였습니다.
제가 걱정이라도 하면 집안 어른들은 '어릴 땐 다 그런 거다', '호기심이 많으면 좋다'라고 대수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대수롭지 않게 외면하면 살았습니다.
딸이 7살이 된 그해 초, 걱정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한글과 산수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나치게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집중이 확연히 흩어졌습니다. 아주 단순한 더하기 문제 5개를 푸는데 무려 1시간이 걸렸습니다. 겸사겸사 정신의학과를 찾게 된 겁니다.
그렇게 조용한 불청객은 우리 가족을 불쑥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우울하고, 걱정되고, 겁나고, 잘 키울 자신까지 없었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불청객과 만난 지도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꽤 익숙해졌습니다. 지혜롭게 서로를 받아들이려고 온 가족이 많은 노력을 해 온 덕분입니다.
어찌 보면 불청객 덕분에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저와 남편은 딸의 장점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눈도 갖게 됐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주 특별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딸과 대화 시간을 특별한 질문에 특별한 답을 찾는 기회로 보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청객과 행복한 동거를 위해 지나온 여정은 분명 큰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가족의 특별한 성장 기회도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조금은 마음 편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말입니다.
너무 좌절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고. 가족이 힘을 합쳐 꾸준히 노력하면 우리 아이만 가진 문제점이 아니라, 우리 아이만 가진 특별함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