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더라도, 너의 걸음을 믿기로 했어”

3월 중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아이는 평소처럼 학원 차량을 놓치지 않기 위해 10분 일찍 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량 도착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차는 오지 않았고, 결국 40분이 넘도록 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학원에 전화를 걸었는데, 원장님은 아이가 오지 않은 것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상황을 알아보고 전화를 주신다더니, 제게 연락을 준 건 차량 기사님이었습니다.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시는 그분께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3월 말까지 학원을 계속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아이의 컨디션을 묻거나 사과의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동안에도 차량이 여러 번 바뀌고 기사님도 바뀌었지만 사전 안내도 없었고,


학원 내 반 배정 시험이 있어도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없었습니다.

궁금한 점들이 많았지만,


‘교육기관에 학부모가 간섭하면 아이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저 믿고 맡겨왔던 저였습니다.

그러다 학원의 실수가 일어난 뒤, 저는 아이와 2주 가까이 고민했습니다.

아이는 마음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공간이 이제는 아이에게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결국 우리는 학원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새 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받았고, 예상대로 '조금 뒤처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괜히 옮긴 건 아닐까, 또다시 비교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곧 제 마음속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건 다른 아이의 속도가 아닌, 우리 아이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 거야.“

조용한 ADHD를 가진 아이와 함께한 시간 동안,


저는 아이가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배워왔습니다.

약물 치료로 식사 시간을 조율하고, 저녁 간식 하나도 고민하며 지내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앞서야 한다는 기준,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때로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속도를 지켜주는 일,

그것이 엄마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응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다짐합니다.

남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리더라도,


내 아이의 걸음을 믿는 사람이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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