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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Sep 15. 2024

59:41로 이기는 승리자가 되고 싶다.

“교수님, 다음 강의에는 대구에서 올라옵니다.”

“이번에는 00 교육원 원장님이 참석하신대요.”

    

병원동행매니저와 생활지원사 강의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분들만 1,000여 명 넘게 배출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나는 이 분들의 양성을 넘어 한 가지를 더 진행하고 있다.   

  

우리 교육원 원장님처럼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싶은 각처의 원장님, 이 강의를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오는 강사님들이다. 심지어 이미 이 사업을 진행 중인데 제휴가 되어 있는 기관에서 보내주는 강사님의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찾아오는 분도 있다.

     

요즘은 매일 시험대에 나를 올려두는 기분이다. 16년 이상 강의장에 서 있는 강사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이 평가다. 평가리스트와 같은 객관적 지표를 만들어 놓고 체크를 하며 점수를 매겨가는 평가가 아닌 오로지 주관적인 의견의 평가다.     


부담 없이 하겠다고 당당히 말은 했으나 이 말은 100% 진실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려 한다. 이런 분들이 참석하는 날은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 들고 강단에 들어선다. 내 마음에 부담이 모아 만들어진 이 돌덩이를 어떻게 쪼개어 분산하느냐가 내 하루의 강의 과제다.     


어떤 강사님은 내 강의를 듣고 자신이 없어 못 하겠다고 원장님을 찾아온다고 한다. 또는 이 정도쯤이야 하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강사님도 있다.


물론 내가 떠 넘겨준 돌덩이의 무게만으로 자신감의 크기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 강의를 보고 못 하겠다고 결정한 4명의 강사의 뒤를 이어간 사람은 강의에 참석하지 않은 강사님이었다. 주어진 교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강사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학생 양성보다 강사 양성이 몇 배는 힘들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16년 전부터 오늘까지 나는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지도해 주는 양성과정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로지 책 한 권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개척하며 오늘까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칠다. 온갖 잡초와 돌멩이들이 두루 섞인 땅을 파헤쳐 가며 옥토를 만들 때까지 그저 밟고 밟고를 무수히도 많이 해봤다. 처음부터 타고난 연사는 없다. 어디까지나 노력과 경험치만큼만 성장할 수 있는 일도 강의다.      


이런 내 생각이 오늘로 전환점을 찾아가려 한다. 내 강의를 듣고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나는 양성을 하는 강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QT로 만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100:0으로 이기는 완승이 좋은 승리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옳은 것은 옳다 말하고 잘 못된 것은 잘 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이 용기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70년 가까이를 살았는데 이제야 그건 용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고백하신 것이다.  

   

바른말과 효과 있는 말은 과연 같은 것인가? 이 말의 답을 찾아가는 설교였다. 어떤 마찰이든 한쪽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자신감이 무너지고 생사가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100:0이 아닌 59:41의 점수로 끝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자존심과 인격도 언제나 존중을 받아야 이런 점수를 지켜갈 수 있다.

    

안 해보던 강의를 하려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을 인정해 주는 강사가 되는 것이 존중의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종종 쉬는 시간에 조용히 나를 찾아오는 강사님들이 있다.   

  

“강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강사님, 잘 가르쳐 주십시오.”

“강사님, 저도 잘할 수 있겠지요?”      


이런 질문을 하는 강사님께는 내 명함을 한 장 전해준다. 그리고 강의 후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 도움을 드리겠다는 말도 명함 위에 살포시 얹는다.    

  

1:1로 만나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조언과 첨언도 전하지 않는다. 타인을 통해 들어온 이야기로 그 사람의 상황을 판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존중이다.     

본인의 의지로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강사들이 아니다. 모두 대표나 원장님들의 권유로 이곳에 온다.   

  

 “저 강사가 오래 강의를 했고, 나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가서 한번 들어보기나 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도 잡고요.”     


이런 멘트가 강사님들이 나를 만나러 오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칠어졌을지도 모른다.     


배우려고 하는 태도보다 평가하러 온 태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번 보여줘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날은 100:0이 되는 날이다. 이점수로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는 강사님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깨닫기 시작한다.    

 

평가하려고 오는 태도여도 좋다. 돌아가는 발걸음에 그건 오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강의가 59점으로 승리하는 강의다.

오늘도 그 자리에 서기 직전이다. 원장님 한 분이 강사지원을 한 분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완승보다  함께 가는 승리를 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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