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기억으로 닳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닳는다
요즘 매주 화요일 늦은 오후, 센터에 수업을 나간다. 오고 가는 길에는 가로등이 많지도 않고 지나다니는 차도 많지 않아 쌍라이트를 켜고 운전한다. 드물긴 하지만 밤산책을 하는 노루나 사람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두 배의 집중력을 발휘해 운전하던 나는 저물어가는 제주 하늘을 보다 찬송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크~신 은~혜라”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오빠가 태어난 지 삼일만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기일에 온 가족들이 큰 외삼촌 댁 거실에 빙 둘러앉아 추도예배를 드렸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찬송을 부르며 좌우로 흔드는 박자와 각도, 그리고 푸근한 몸선이 내 기억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평소에 하던 버릇들과 목소리 같은 할머니의 사소하지만 나에겐 소중한 일상의 모습들이 절대 희미해지지 않길 바라며 그 모습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와서는 할머니를 떠올릴수록 할머니의 기억이 닳는 것 같아, 일부러 떠올리지 않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리움과 헛헛한 마음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다 문득, 기억은 기억할수록 닳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닳는다는 것을 알았다. 기억을 떠올리든, 아니든, 그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진다는 생각에 나는 할머니를 마음껏 그리워하기로 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정리되거나 마음이 가뿐해지지 않았다.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다. 나는 안다.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것은 그를 또는 그녀를 타투처럼 평생 마음에 새긴다는 것, 또는 매일 반복되는 밤, 하늘의 별처럼 가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대화를 할 수도 없지만 그저 반짝임으로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임을.
누군가 그랬다. 진짜 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아빠도, 할머니도 아직도 살아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가 계속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