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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06. 2024

며느리라는 이름표

새별오름에서

병원에 다녀온 후 축축했던 마음의 공기는 살짝 가벼워진 듯했다. 진료받는 동안 강아지가 미용을 해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와서일까. 시내를 다녀와서일까. 제주에서 나 홀로 스타벅스 드라이브쓰루 도전을 성공해서일까. 기분 전환이 제대로 된 것도 같다. 전날보다는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식탁에 앉았다. 받아온 검사결과지를 다시 꺼내보았다. 진료실에서 들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직접 결과지를 보니 충격과 덤덤함 그 사이 어딘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남편이랑 아이가 집에서 나가고 나면 집안일을 하고 바로 자격증 공부를 해요.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요. 아이가 1시에 끝나는 날도 있고 2시, 3시에 오는 날도 있어요. 아이 데리러 가서 오후시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하고 씻고 자요.”

“정말 바쁘게 사시네요.”


처음이었다. 전업주부의 하루를 바쁘게 산다고 한 사람. 의사 선생님도 같은 여자라 그런가. 남편 월급 축내는 잉여인간처럼 느끼던 차라서 일하는 다른 여성에게 바쁘게 산다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아이가 36개월 전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 때 시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또 떠올랐다.


“요즘 엄마들은 대학까지 나와서 왜 집에 있는지 모르겠어. “


시부모님에게 들었던 말들은 참 곱씹을수록 의도도 모르겠고 상처가 된다. 내가 그렇게 들어서 일까. 내 탓인 것 같아 또 자책하게 된다. 자책하면서 까지 이해하려는 것도 욕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자.


제주에 와서 체중이 많이 늘었다. 이사날짜와 시누형님의 결혼식 날짜가 하루차이로 잡히는 바람에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한 학년을 마치고 제주에 온 터라, 오자마자 방학이 시작됐다. 아이와 하루종일 있는 것이 행복하지만 힘든 일이라는 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알 것이다. 아이 먹을 때 같이 먹고 운동은 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체중이 늘었다.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할 때쯤 나를 돌볼 겨를이 생겼다. 늘어난 체중을 감량하기로 다짐했다. 남편은 필라테스를 등록하라고 했지만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홈트요가를 해보기로 했다. 혼자 하는 운동이 지루하고 매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몸이 무거우니 더 움직이기도 싫고 힘들었다. 의지박약 같이 느껴져 또 자책감이 들었다. 그만두었다. 다시 가벼운 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세를 버티는 시간과 힘이 예전 같지도 않고 해야 한다는 의지가 약해진 게 문제긴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몸을 내가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끝이난 유튜브 홈트요가.


검사 결과지에 쓰인 심한 우울증이라는 글자를 보고 생각했다. ‘그래, 새롭지도 않은 진단명인데, 뭐. 마음의 감기를 달고 사는 것뿐이야. 우울증에는 운동이 좋다는데, 홈트는 매일 하기는 어려우니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가까운 새별오름을 오르자. 비록 남편 카드로 고기 사는 경제력 없는, 별로인 여자, 대학까지 나와놓고 집에 있는 여자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오르다 보면 뭔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한 번 오르고 두 번 오르고 점점 오르다 보면 미세하지만 미세한 것들이 쌓이면 나는 변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미한 확신이 들었다.


새별오름


첫날. 중간즈음 올랐을까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나약한 유전자가 또 발현되려던 찰나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니 꽤나 많이 올라와 있었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포기도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나의 며느리라는 이름표를 수없이 떼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붙어 있는 것처럼. 제주의 푸르름을 내려다보며 살짝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올라온 길에 비하면 가야 할 길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무작정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이만큼이나 와있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나의 시댁 트라우마도, 나의 며느리라는 이름표도 그렇게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에는 잘해보고 싶었다. 아니 꼭 잘 해내고 싶었다. 내가 예민해서 생긴 문제이니 나만 참고 웃으면 잘되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아니다. 아니라는 것을 9년 만에 알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움츠려들 수 있으면 움츠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입바른 소리를 해서 잘못된 걸 바로 고쳐 잡겠다는 생각도 시댁일에 대해서는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그렇게 나는 첫날 오른 새별오름에서 며느리라는 이름표를 뜯어냈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제주 바람에 날려 보냈다. 훠이 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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