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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l 09. 2024

엄마라는 덫

5분의 1 사랑

월요일 저녁. 침대에 누웠다. 종아리 아래가 욱신욱신하다. 운전을 많이 해서 그런가. 3주 만에 병원에 다녀왔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일부러 아침부터 분주함을 떨었다. 그냥 시내에 가는 날엔 괜히 마음이 분주하다. 설레기도 하고 시내에 간 김에 여러 군데를 들려서 할 일들을 한 번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잠깐은 쉴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받을 때부터 상담날에는 이슈나 질문을 가지고 가는 버릇이 있어서 오늘 진료 때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을 하며 운전을 했다. 지난 3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그 일들이 가마득하게 느껴졌다. 친정에 다녀온 이후 단조로운 나의 일상에 소소한 만남과 선물 같은 일들이 마구 넘쳐났는데 특별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 걸 보니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오늘은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하지?’ 하며 준비되지 않은 불안함이 올라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떠오르지 않았고 ‘에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지 뭐. ’하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내 차례가 되었다. 신기하게 진료실 의자에 앉으니 엄마에 대한 고민이 떠올랐다. 의사 선생님은 여느 때와 같이 잠은 잘 자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셨고 잠은 새벽 4시부터 한 시간마다 깨는 건 여전하고 엄마와의 관계가 고민이라고 했다.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정신이 없으신지, “일단 약은 유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다음에 이야기 나눠보도록 할게요.” 라며 빨리 진료를 끝냈다. 어차피 나 또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최근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지긋지긋한 엄마와의 관계다. 나의 우울증의 출발이라는 점,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요즘 자꾸 음미하게 된다. 아무래도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다. 어쩌면 수십 가지의 복잡한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크게 봤을 때 엄마가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다. 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서 편하다기보다는 익숙해서 편할 때가 있지만 어떨 때는 엄마가 족쇄처럼 느껴져 갑갑하기도 하다. 엄마를 대하는 나의 감정의 폭은 널을 뛴다. 좋을 때는 안쓰럽기까지 하다가도 싫을 때는 정말 혐오스러울 때도 있다. 엄마와의 관계가 불편하고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의 원인이 나의 정신적이든 정서적이든 완전하지 않은 독립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완전한 개체로서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오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놔줘야 나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지난 6월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친정에 다녀간다고 엄마에게 말한 뒤로 우리에게 적당한 거리가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의 전화는 더 잦아졌다. 1일 1통화는 기본이고 통화의 내용은 엄마 본인 생활에 있어서 고민되는 부분과 관계의 어려움들, 결정해야 하는 것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상담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했고 자신의 괴로움을 끊어내 줄 뾰족한 해결책들을 원했다. 나의 일상과 나의 고민, 나에 대한 걱정은 우리 통화내용엔 없었다. 항상 고객만족 별 다섯 개를 받는 나는 언제쯤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각을 재고 있지만 딱히 타이밍이 보이진 않는다.


지난주 목요일에 이런 이야기를 독서모임 언니들에게 털어놓았고 심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언니들은 내가 엄마의 정서적 배우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새로운 반려자가 생겼지만 엄마의 정서적 배우자는 여전히 나인셈이었다. 맞다. 내가 작년에 오빠를 같이 키우는 듯한 이 역할을 안 하고 싶다, 나도 엄마 자식이라고 울고 불고 했을 때 엄마는 아빠가 없어서 널 남편 삼아 살아왔는 데 어떡하냐며 나에게 화를 냈다. 그 이후 나는 이 관계에 무기력해졌고 체념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고 유기불안이 있는 나의 내면아이 때문에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니다. 그만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은 엄마와 거리를 두고 바쁘다고 대충 둘러대며 받아주지 않는 게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주저하게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평소에 고민이 있다면 조언을 듣고 빠른 판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편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이 문제에 대한 나의 태도는 스스로가 어색하리만치 주저했다. 무엇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사실 엄마가 없어도 내 삶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결혼 후 매일 그 생각으로 살아왔다. 실제로도 나는 남편과 아이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아니었나 보다. 애정결핍이 이렇게나 미련맞고 바보스러운 것이었다. 항상 엄마사랑에 목마른 나는 오빠만큼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게는 세차장을 인수할 생각을 하고 나에겐 반찬과 과자 택배를 보내는 엄마가 떠올라 순간 열이 받아 뜬금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이야?”

“귀하고 소중한 딸이지. 핸드폰에도 그렇게 저장되어 있는데.”

“그렇군.”

“ㅎㅎ 너한테 네 아들은 어떤 아들이야?”

“나한테 우리 아들은 전부지. “

“나도 그래.”

“에이. 엄마는 2분의 1이지.”

“사실 저쪽(오빠)이 5분의 1이고 네가 5분의 4야.”

옆에서 듣던 새아버지가

“그럼 재산을 5분의 4를 달라고 혀라. “라고 하셨다.


나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지만 마음이 씁쓸했다. 내가 5분의 1 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아픈 손가락은 오빠였고 나는 알아서 잘한다며 내쳐내기 일쑤였다. 그런 기울어진 마음을 말로라도 퉁치는 엄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남편도 둘째인데, 남편은 부모의 편애를 일찍이 받아들였다. 항상 첫째에게 밀려난 우리 둘의 가족계획이 아이 하나에서 멈췄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둘째로 살아오며 겪었던, 어쩔 수 없는 기울어진 마음을 둘째에게 대물림하는 서로 또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분노 또는 참담함을 겪고 싶지 않았다. (모든 둘째들이 그런 것은 아니리라. 우연히 우리 부부가 묘하게 닮은 점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아이를 낳고 역시 첫째는 특별하다며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손가락 하나 잘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남편은 손가락을 내보이며 매우 씁쓸해 보였지만 잘리는 손가락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잔인한 그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그래도 답은 정해져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그것이 나의 운명인 것을.


새로 시작하기 라는 활동에서 만든 나의 작품

지난 금요일 <아름다운 실수>라는 그림책으로 수업을 들었다. 실수가 또 다른 시작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수업이었는데 토분을 깨는 것을 시작으로 주어진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마음껏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토분은 엄마였고 난 엄마라는 화분에서 자랐지만 전혀 다른 꽃이 되어 버린 모습을 클레이로 덮어 씌워 표현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는 꽃은 나의 아이를 상징한다. 우리 집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는데 토분을 클레이로 덮었을 뿐 토분은 토분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참 엉망이 되곤 한다. 엄마가 엄연한 타인이 되는 그날까지 나는 나를 응원한다. 그날이 꼭 오겠지.


이미지 출처: 일러스트레이터 류그림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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