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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l 12. 2024

하필이면 같은 날

 많은 걸 기대하면 많은 걸 실망하는 법

시할아버지의 제삿날과 친정아버지의 기일이 같다. 시아버지와 나는 아버지를 음력으로 같은 날에 잃었다. 물론 연도는 다르지만. 삼십 년 이상 목사님을 모시고 산소에 가서 추도예배를 드렸던 엄마가 나의 결혼을 앞두고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며 너희끼리 하라고 했다. 철부지 우리 남매는 함께 이어가지 못했고 자연스레 없어졌다. 그래서 딱히 친정에 갈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빠의 기일인만큼 마음이 무거웠고 아빠가 그리웠다. 나는 결혼식도 올리기 전으로 기억나는데 그날에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시할아버지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했다. 아빠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고 이제 그 집사람이 되었으니 시할아버지 제사에 가는 걸 엄마가 허락했다. 나는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모든 처음 겪는 일이 그러하듯 잘 모르고 어른이 시키는 대로하며 아리송했다. 이게 맞나 싶었고 그냥 뭔가가 이상했다. 사실 나는 제사상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음식에 절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아빠의 기일에 다른 집에 와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제기도 놓을 줄도 모른다며 놀리기까지 하셨으니 제대로 어리바리했다. 제사상은 거의 다 차려졌고 시간을 기다리며 시아버지와 강아지 산책을 함께 나갔다. 당시에는 시아버지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에게도 아버지가 생긴 것처럼 든든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라 가능했던 생각이리라. 그 당시에는 시아버지의 민낯을 모를 때라서 남편 없이 시아버지와 단둘이 산책도 나갈 수 있었다. 시골 밤하늘은 참 맑았다. 별이 쏟아졌다. 나는 별을 보며 이야기 헸다.


"오늘 저희 아빠도 기일이에요."

"그래? 같은 날이구나."

끝.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기일을 보내는지,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어쩌다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그간 고생 많았다는 등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고 물어보실 줄 알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으시고는 담배를 태우시며 시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으셨다. 시할아버지는 2013년 마을 어떤 삼촌차를 타고 읍내에 나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며느리가 딱해서 사돈어른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 시할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올 때마다 사돈어른의 기일에 대한 말씀은커녕 5-6시간 걸리는 거리를 오네 안 오네 하시며 남편의 바쁜 회사일정을 핑계 삼아 못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아이랑 나만이라도 오라는 등의 참석여부를 가지고 서운해하시고 화는 물론이고 혼까지 내셨다. 시아버지가 북을 치시면 시어머니는 장구치고 춤까지 추시며 밀어붙이셨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시아버지로부터 멀어졌다. 당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게 엄청난 큰 일처럼 여기는 시아버지를 볼 때 참 어리게 느껴졌다. “당신만 아빠 돌아가셨냐. 나도 돌아가셨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여태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말이다. 유치하지만 감정이 욱하고 올라올 땐 혀끝까지 나온다.


엄마가 아빠의 추도예배를 보이콧한 이후로 오빠네 가족은 아빠의 기일을 기억하기 쉽게 양력으로 바꿔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시할아버지와 아빠가 음력으로 같은 날이다 보니 시할아버지 제사라고 하면 아빠가 떠오르곤 한다. 얼마 전 그날도 어머니는 분위기 좋았던 단톡방에 “오늘 할아버지 제사다 전화라도 드려라” 라며 평소에 웃음기 있는 메시지와는 달리 정색하시며 말씀하셨다. 정색이 이해가 되긴 했다. 둘째 작은 아버지는 이혼을 하셔서 둘째 작은 어머니는 안 계신지 오래고 내가 결혼하기 직전에 다른 분과 재혼을 하셨는데 몇 년 전 그분과도 이혼을 하셨다고 들었다. 셋째 작은 어머니는 듣기로 시할머니에게 마음이 상했는지 어쨌는지 최근 며느리 사표를 쓰신 걸로 안다. 그래서 며느리라곤 시어머니뿐인데 시어머니의 며느리인 나는 아이를 출산 후 제삿날엔 내려간 적이 없기에 이번 제사는 시어머니가 혼자서 준비하셨다. 그러기에 뾰족하고 예민하실 수밖에. 살아생전 시어머니를 끔찍이도 아끼시고 사랑해 주셨던 시할아버지 제사이지만 둘째는 이혼했다치고 셋째는 멀쩡히 살면서 며느리로서 도리는 안 하는 것도 열받으실 테고 자기도 며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제사를 혼자 짊어지고 계신 게 얼마나 분통이 터지셨을까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 마음에 공감이 갔다. 나 또한 도리를 못하고 있기에 죄송하다며 고생 많으셨다고 전화드렸고 위로가 되었길 바랐다. 남편에게 오늘 제사상은 어머니 혼자 차리신 것 같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는 걸 보니 너도 엄마라 마음이 아프구나 싶어 내가 도와야 하는 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니라고 하며 막내숙모의 부재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괘나 복잡해 보였다.


내가 처음 드린 시할아버지 제삿날에는 모든 집안이 모였고 손자손녀들과 둘째 작은아버지 부부와 형님부부, 우리까지 있었으니 시골집이 북적북적했다. 이제는 다 차려진 제사상에 절만 하는 시아버지와 팔에 깊스하고 계신 막내 작은 아버지, 막내 사촌아가씨만 있을 뿐이었다. 참 양쪽 무릎이 모두 인공관절이시라 의자에만 앉아계신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도 계셨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쓸쓸한 제삿날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번에 오셔서 우애 있게 지내라며 압박을 주던 시아버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시아버지는 삼 형제 중 장남인데 교과서에 나오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장남의 역할을 하는 여느 평범한 중년남성의 모습과는 많이 멀었다. 결혼하고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시아버지를 통해 배웠고 깨달았다. 시간에 맞춰 아이와 함께 영상통화를 드렸다. 못 가서 죄송하다는 9년째 레퍼토리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아빠의 기일 이야기를 시부모님은 모르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에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저희 아빠도 기일인데 친정에도 전화드려야겠어요."라고 했다.


그 이후 조용했던 단톡방에 몇 시간 뒤 시어머니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설거지 끝. 오늘은 일찍 해서 일찍 마쳤다."


많이 서운했다. 이런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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