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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29. 2024

평범해지기 위해 특별해지기 위해

닮은 듯 다른 듯 우리의 이야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 있는 아이들이 참 많이 부러웠다. 그저 아빠가 있는 것도 부러웠지만 아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상황들이 부러웠다. 예를 들면, 학원을 마치고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아빠라고 부를 대상과 부르며 달려갈 품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또 놀이동산에서 아빠의 목마를 타는 아이를 보며 평생 나는 못 타보겠지 싶어 서글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리움과 아쉬움은 내 마음에 조금씩 균열을 냈고 커갈수록 큰 구멍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나중에 꼭 명줄 긴 신랑 만나라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하셨다. 아마도 이른 나이에 혼자가 된 딸을 보는, 참담한 마음을 그렇게나마 표현하셨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사람마다 이마에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쓰여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세상은 더 이상 내가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해방감을 느꼈다. 어쩌면 세상의 관심이 아니라 자취를 하게 되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여전히 불만족스러워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엄마를 매일 보지 않게 되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아빠만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결핍은 여전했다. 어릴 때는 아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그렇지 못한 내 상황에 좌절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엄마, 아빠, 아이들로 구성된,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평범해지고 싶었다. 나에겐 없는 평범한 가정이라는 허상을 꿈꿨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내 20대엔 그 열망은 커져만 갔다.


남편은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가족에서 자랐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 남편. 아버지는 서울에서 일하시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어머니와 시누형님과 남편이 지내는 지방에 내려오셨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어린 시절 아빠와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닮았다. 남편은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때 아버지와 지내며 어린 시절 부족했던 시간을 채웠던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아버지라는 부를 대상과 달려갈 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닮은 듯 달랐고 다른 듯 닮았다. 스물일곱, 스물여섯에 일하다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방송국에서 만났는 데 당시에 나는 막내작가였고 남편은 촬영감독님을 보조하는 오디오맨이었다. 당시 남편은 휴학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졸업 후 긴 방황 끝에 취업을 했다. 우리는 촬영장에서 처음 만났고 자연스럽게 그날부터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편은 지난 연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나와 결혼한 이유에 대해 물으면 항상 같은 대답을 하곤 한다. 자신은 사랑에 빠진다는 게 늘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특별해지고 싶어 자신도 사랑에 빠지고 싶었는데 그간 연애들은 연락이나 만남의 귀찮음을 이겨낼 만큼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의 연애는 달랐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 연애들에 대해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고 연애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이 들던 시기였다. 예전만큼 연애가 우선이 되지도 않았고 연애에 모든 것을 걸지도 않았다. 우리의 데이트는 특이했다. 여느 회사들처럼 일이 몰릴 땐 정신없이 휘몰아쳤고 여유로울 땐 여유로운 방송국 생활이었다. 나는 첫 사회생활인지라 매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그런 나에게 평일 데이트는 사치였고 주말엔 밀린 잠을 자느라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 출근을 하지 않은 주말에는 우리 집에서 나는 하루종일 자고 남편은 옆에서 알아서 식사를 챙겨 먹고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너무 미안했지만 평일에 밀린 잠이 몰려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늦은 오후가 되곤 했는 데 당시 신촌에서 살았던 나는 남편과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래

잤으니까 이제 데이트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큰맘 먹고 영화관에 가면 나는 또 영화가 시작되면 잤다. 항상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오는 데 그런 나를 보며 웃기다고 귀여워했다. 어떻게 한결 같이 머리만 대면 자느냐고 놀리기까지 했다. 남편과 보내는 시간들은 사실 설렘과 떨림보다는 편안함이었다. 우리는 대화를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내용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밤새도록 전화를 하고 방송국 앞에서 만나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우리는 아이를 재우고 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새벽 두세 시가 되어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잠에 든다.  


연애를 하며 처음부터 편안함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나의 상처와 결핍까지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건 남편이었다. 그간의 연애들에서 나의 결핍을 알아보는 남자들은 없었다. 연애뿐 아니라 엄마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이었다. (엄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없는 것보다 남편이 없는 게 더 힘든 거라고 한 걸 보면 여전히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듯하다.) 남편은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알아봤고 그렇다면 이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결혼하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평범해졌고 또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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