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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l 02. 2024

나야말로 진짜 독립

원가족 turn off

친정에 다녀온 날 머리카락을 잘랐다. 아주 짧게. 저녁을 먹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설거지도 하기 전에 화장실에 가위를 들고 들어가 무작정 잘라버렸다. 집에서 혼자 자른 거라 지저분했지만 뒷목이 시원했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단순히 더워서 잘랐다고 둘러댔다.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짧아진 머리를 보며 며칠을 생각했다. 고민은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냥 속이 시원했다. 그게 전부였다. 친정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마음의 심연에는 지겨움이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리라 다짐을 하곤 했다. 그 지겨움이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와 머리를 잘랐을까. 친정에서 잘려 나오고 싶은 무의식의 행동이었을까. 진짜 지겹다. 그런데 걱정된다. 내가 봐도 도라이 같다. 나는 이제 진짜 끝이라는 마음으로 다녀왔는 데 또 다른 시작이 된 느낌이다. 엄마는 또다시 오빠에게 이야기해 보라며 신앙생활을 종용하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 엄마가 했다고 말하지 말고. 나는 엄마의 확성기인가. 저 둘의 중계자인가. 통역사인가. 그게 무엇이든 이제는 정말 그만하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세 사람이 워낙 특별하고 끈끈하니까 그런 거지 안느냐며 나를 진정시켰다. 그런데 나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끈끈함과 특별함사이에 껴버린 듯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육아메이트처럼 되어버린 게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예전에는 나도 같은 자식이라고 나는 내가 걱정되지도 않느냐며 나도 힘들다고 울부짖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너는 그냥 무엇을 하든 믿어지는 데, 오빠는 그러지 않아 걱정하고 도와주는 거야."라는 것이 엄마의 대답이었다. 나의 서운한 감정의 수용은 전혀 없었다. 또한 자식이 둘이면 조금 더 난놈이는 모지란 놈을 돌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나는 난놈도 아니고 오빠는 모지란 놈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너는 졸가리 있게 말도 잘하니 네가 대신해서 엄마의 메시지를 전달해 줄 뿐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 걸까. 둘 사이에서 나는 뭘까. 원래 가족이라면 이런 걸까. 각자 결혼했으니 새로운 가정에서 잘 지내는 게 최선이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뭔가가 지겹고 그만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지난주 월요일에 제주에서 만난 언니들과 커피타임을 가졌다. 나는 아이를 낳고 사람을 사귀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속도를 내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내가 속도를 냈다기보다 언니들의 수용력에 빨려 들어갔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거나 호감을 표현하면 겁을 내고 내빼는 특징이 있는 내가 이번엔 언니들을 쫓아다니게 되었다. 언니들은 참 다정하고 다재다능하며 용감하다. 언니들 사이에 끼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고맙게도 언니들은 나를 모임에 끼워줬다. 항상 일대일 관계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어느새 언니들과는 장르를 넘나들며 어떠한 주제로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들은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과 방황, 두려움의 시간을 그들의 방식대로 묵묵히 견뎌온 어른들이었다. 나는 이런 여성들을 만나본적이 드물다. 아마 내가 마음에 문을 닫고 있어서 만날 기회를 놓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분명 스쳐 지나갔을 건데 거리를 좁히지 못했을 거다. 우리의 대화는 끊김이 없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화장실도 다녀오기 싫을 만큼 재밌다. 이야기가 흘러 나는 언니들에게 친정 다녀온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이젠 그만하고 싶은 데 안될 것 같다고 했다. 언니들은 안타까워하며 책을 추천해 주고 나의 마음을 대신 말로 표현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왔다. 울보 맞네. 갈팡질팡하며 ‘원가족과의 관계는 이런 거지 하며 받아들이다, 또 우 씨 그만하고 싶어 지겨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둘 사이에서 조율을 하거나 소통을 대신했을 때 두 사람에게 은근히 바라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 것조차도 괴로웠다. 가족이라면 응당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그러나 문제는 내 가족은 더 이상 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 픽업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일어나야 했다. 멀지 않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고 말았다. 하소연이었다. 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인가. 처음으로 생각했다. 들어주고 흥분한 감정을 다독이며 전화를 끊었다. 절망적이었다. 이 패턴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이별이 필요하다. 나도 엄마도. 서로의 경계가 너무 건강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 방을 탈출하고 싶지만 사방이 막힌 것 같았다.


그렇게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데다가 머리카락까지 지저분해서 하나라도 정리가 필요했다. 다니는 샵에 연락을 하고 갔다. 샵에 들어서자마자 머리를 보시고는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라시는 선생님을 보니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마음속 나는 울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했겠냐는 말이 튀어나올뻔했다. 머리를 다듬으면서 다시 다짐했다. 진짜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마지막을 지키자고. 머리칼이 잘려 나갈 때 엄마와 나 사이에 이어져 있던 끈들이 잘려 나가고 있다고.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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