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중 일부
지금의 내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구절이다.
지난 25년 동안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돌고 또 돌던 '학교'라는 궤도.
그 궤도에서, 나는 예기치 않게 이탈해버렸다.
사람들은 ‘학습 연구년’이라는 로또에 당첨된 나를 부러워했지만,
발표 직후의 반가움은 단 1분도 채 되지 않아 내 안에서 사라졌다.
그 짧은 기쁨은 금세 두려움으로 번졌고, 조용한 불안으로 나를 물들였다.
‘정말 괜찮을까, 이 궤도를 떠난 내가.’
‘학습 연구년을 포기해야 하나.’
그 고민을 꼬박 두 주 동안 끌어안으며, 나 자신을 계속해서 되돌아보았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엉켜 내 마음을 휘저었다.
그 안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두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무도 흔들지 않는 고요한 시간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낯선 여유로움은 때로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지만,
그 속에 묵직한 안정감이 서서히 스며들며 내게 위안을 준다.
그리운 것이 있다.
바로 내 삶의 중심이었던 ‘수업’이다.
함께할 아이들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그리움은 점점 더 쌓여 허전함으로 자리를 잡는다.
학교라는 궤도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수업이라는 궤도 안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일곱 살, 유치원에 입학하며 내 삶에 ‘수업’을 보듬었다.
배우는 자로 시작해, 어느덧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
삶의 자리도, 마음의 쉼터도
언제나 교실 안에 있었다.
그렇게 평생, 수업이라는 궤도 속에서 울고 웃었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을 제외하면,
내 모든 삶엔 늘 수업이 있었다.
함께할 아이들이 없는 2025년,
수업의 자취가 사라진 그 자리에
내 사유가 자라날
고요하고 단단한 땅을 마련하려 한다.
이제부터 나는 수업과
내 삶에 대한 기억을 토렴하듯
그 의미를 다시금 음미하려 한다.
이 글은 교실을 떠나 바라본 ‘수업’에 대한 사유이자,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남긴
하나의 작은 발자취이다.
수업은 나의 삶 그 자체였고,
그 삶은 나를 지탱해준 궤도였다.
이제, 그 삶의 결을 느긋하게 어루만지려 한다.
혹여 이 이야기에 잠시라도 머물러 주는 이가 있다면
그 따뜻한 멈춤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여정의 끝자락에서 한 발자국 더 내딛고 싶다.
그 발자국이 새로운 길을 여는 시작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