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사회의 조건] part 4. 유전공학에 의한 인간 개조 반대론
기술로 아이를 설계할 수 있는 시대, 사랑과 선택의 경계를 우리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것인가, 바꾸어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
유전공학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그 경계에 있다.
A. 받아들이는 사랑은 아이가 있는 그대로여도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마음이다. 변화시키는 사랑은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다. 유전자공학은 후자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조건적이고 통제적인 형태로 바꿀 위험을 품고 있다. 기술이 아이를 ‘설계’하게 하는 순간, 우리는 아이가 스스로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는다는 본래의 사랑을 잊기 쉽다.
A. 재능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다. 기술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선택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겸손을 잊게 만든다. 겸손의 윤리는 주어진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요소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술적 능력과 인간적 겸손 사이의 균형이 바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A. 과잉 육아와 과도한 교육은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완벽한 기대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은 사랑을 왜곡시키고,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고 발견할 기회를 제한한다. 본래의 사랑은 아이가 스스로의 속도로 성장하도록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이지만, 과잉 육아는 그 본질과 충돌한다.
A. 과거 우생학은 강제적이고 차별적이었다. 현대의 유전자공학은 자발적 선택으로 나타나지만, 사회적 압력과 결합하면 아이를 ‘설계된 존재’로 만드는 윤리적 문제가 반복된다. 선택의 자유가 사회적 강제와 맞물릴 때, 인간은 기술로 가능한 능력과 우연히 주어진 삶의 선물 사이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A. 유전자 개조는 부유층과 빈곤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아이의 ‘가치’가 선택된 능력으로 판단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삶에서 우연히 주어지는 선물과 가능성을 경험할 기회를 줄이며, 사회 구조와 인간관계, 기회의 평등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도구이다.
A. 샌델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와 “무엇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기술로 가능한 능력과 겸손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도록 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요소를 존중하는 태도를 성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