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의 목소리 Epilogue 2.
학교는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흘려보낸다.
아이와 교사를 지키지 못하는 그 무책임의 결과를 견디는 사람은 늘 송하영 같은 교사들뿐이다.
학교는 언제나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행정은 시스템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정책은 시스템을 바꾼다고 말하며, 위계는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시스템은 아이들의 눈빛도, 교사의 목소리도 담아내지 못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은 곧장 움직이는 듯 보인다.
대책 위원회가 꾸려지고, 보고서가 작성되고, 수십 장의 문서가 오간다.
하지만 그 문서들은 아이들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와 아이들은 그 문서의 무게를 짊어진다.
정책이 내려오면 교사가 실행해야 하고, 실행 과정에서 생긴 틈은 교사가 감당해야 한다.
결국 책임은 늘 가장 아래, 교사와 아이들의 어깨 위에 놓인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중학교의 학부모회장이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피해자인 상황, 그러나 관리자는 모른 척 외면하고 있었다.
학부모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학교를 아니, 학생들과 선생님을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좋을까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 말 뒤에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방치된 교사와 아이들을 향한 절박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리자는 왜 존재하는가?
관리자가 해야 할 역할은 하지 않은 채, 권위만 내세우고 대접만 받으려는 자리가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는 2025년이다.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고장 난 채로 버티고 있었다.
1970년대와 지금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이들은 여전히 문제아와 모범생으로 갈라지고, 교사는 여전히 혼자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
바뀐 것은 서류의 양식과 보고서의 표지만일뿐,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구조의 기이함은 실패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실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은 곧 담임의 ‘지도 실패’가 된다.
행정 착오가 생기면, 그것은 교사의 ‘서류 미비’가 된다.
아이들의 안전에 구멍이 뚫려도, 교사의 ‘관리 부실’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위로 갈수록 책임은 사라지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은 배가된다.
교사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시스템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아이가 무너져도, 또 다른 아이를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면 된다는 듯, 그 톱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헌신과 희생으로 버티는 교사의 어깨 위에서만 이 위태로운 균형이 유지된다.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책임.
그것이 교실을 고장 난 상태로 방치한다.
시스템은 늘 같은 대답만 반복했다.
“네가 책임져라.”
그리고 언제나 그 무책임의 결과를 치우는 사람은 송하영 같은 교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