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바뀌지 않았다.

하영의 목소리 Epilogue 1.

by 차미레

평생을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세 번째로 옮긴 지역이 삶의 터전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교단에 섰던 아이들은 벌써 서른일곱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교실은 변하지 않았다.
교실은 여전히 교실이었다.


교실은 늘 사각형이다.
사각형의 교실, 사각형의 책상, 사각형의 시간표.
모든 아이는 그 사각형 안에서 ‘정상’이라는 이름의 틀에 끼워진다.
조금만 기울거나 삐져나오는 순간, 그 아이는 ‘문제아’가 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지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양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맞지 않는 아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틀이 너무 단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일곱 번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 나는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았다.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은 교사를 향해 미끄러지듯 책임을 흘려보냈다.
교사 수가 줄어들면 남은 교사에게 업무가 몰렸고,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담임이 ‘관리 실패’라는 낙인을 감당해야 했다.
성적, 생활, 정서, 돌봄…
본래는 여러 주체가 함께 나눠야 할 몫들이 한 명의 교사에게 덧씌워졌다.


교실은 늘 위태롭게 유지된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위태로움의 강도가 세진다.
교사의 열정과 자기희생으로 간신히 붙잡힌 균형, 그것이 이 시스템의 기본값이다.
누군가는 이 구조를 ‘헌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책임감’이라 부르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소진’으로 보인다.


가장 기이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너무 ‘정상’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처음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새 당연한 일과표가 되어 있었다.
교사들은 묵묵히 견디는 법을 배웠고, 아이들은 침묵으로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교실은 마치 한 번도 시간을 통과하지 않은 것처럼,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의 얼굴은 바뀌었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교실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부서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부서진 조각들을 치우는 일은 언제나 나 같은 교사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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