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기억, 잊혀진 기억 둘 다

작은 쓰담 12. 하루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by 차미레
스쳐가는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내 안에 남는다.
잊히는 기억과 잊혀진 기억 사이,
그 여백을 기록으로 물들인다.


기억의 얼굴을 살포시 들여다본다.

기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스스로 놓아주어 잊힌 기억.

붙잡고 싶었지만 흩어져 버린, 잊혀진 기억.


잊힌 기억은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 찾아온다.

상처와 후회, 더 이상 머물 자리가 없는 순간들.

우리는 그것을 흘려보내며 오늘을 살아낸다.


반대로 잊혀진 기억은 다르다.

간직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 것들.

아이의 첫 옹알이, 함께 웃던 저녁 식탁,

하늘을 가득 채운 노을빛.


붙잡고 싶었던 순간이 희미해질 때,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삶이 건네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맑은 하늘,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

투덜대며 매달리는 딸아이의 응석.


잊힌 기억을 조금씩 메워 가며

희미한 빈틈 위에 색을 덧대듯

서서히 채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기록은 거창할 필요가 없었다.

짧은 메모 한 줄, 사진 한 장,

그날 흘러나온 음악 제목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하루를 지탱하는 등불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펼쳐 보았을 때,

그 순간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는 따뜻한 기억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제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흘러가는 시간 속, 작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빛바랜 사진처럼,

오래된 일기장의 잉크처럼,

삶의 한켠에서 나를 다독여 준다.


잊힌 기억은 놓아주고,

잊혀진 기억은 기록으로 되살린다.


흘러가는 하루가 소중하다고 말해주듯,

기록은 오늘도 나에게

작은 쓰담이 되어 준다.

이전 11화어른답다는 말의 무게